미래를 내다 본 ‘최태웅 감독의 눈’

입력 2016-02-1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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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최근 2경기에서 단 한 번도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았다. 선수들이 알아서 척척 움직인 덕분이다. 최 감독의 리더십을 앞세워 현대캐피탈은 최근 14연승행진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14연승 선두 남자배구 현대캐피탈…그들을 춤추게 한 ‘5가지 리더십’

1. 소신. 스피드 배구 흔들림 없는 목표
2. 혜안. 선수 장점 찾아 강한 동기부여
3. 공감. 성과를 통해 제시한 팀 방향성
4. 소통. 수평적 소통…견고해진 신뢰
5. 원칙. 현장·프런트 확실한 역할 분담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스포츠는 경영이론을 검증하기 좋은 곳이다. 실제 경영과 비교해 새로운 생각과 흐름, 변화에 대한 테스트가 빠르고 확실하다. 스포츠의 특성상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애매모호한 결과 대신 성패가 명확하다. 한 시즌이면 결과가 확인된다.

감독을 경영자에 대입해 상대팀과 경쟁하면서 시즌을 이끌어가는 전략과 전술, 준비과정을 살펴보면, 외부의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비하며 생존을 추구하는 기업과 많이 닮아있다. 삼성화재 배구단의 성공사례를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공유하고 신치용 전 감독이 고위임원들에게 그 비법을 자주 강연했던 이유다.

선수라는 다루기 어려운 구성원을 통솔하는 감독이 프런트와 상호존중해가면서 경기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팬과 접점을 찾고 우승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행위는, 노동자와 경영자가 힘을 모아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눈여겨볼 팀은 남자프로배구 현대캐피탈과 최태웅(40) 감독이다. 흥미로운 성공사례가 많다.


● 리더의 올바른 방향 제시와 미래를 보는 혜안

젊은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뒤 “스피드 배구를 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봤다. “우리 상황에서 무리”라는 말도 나왔다. “일본도 10년을 시도했는데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스피드 배구의 개념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이제 모든 배구 팬은 최태웅 감독이 말하는 ‘업템포 1.0 배구’의 실체를 안다.

스피드 배구는 세터의 빠른 토스와 공격을 상징하지 않았다. 모든 선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창의적인 공격 루트를 찾아내는 ‘협업의 완성체’를 말한다. 스피드는 빠른 생각과 준비단계의 속도였다. 최근 현대캐피탈의 14연승행진 속에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새로운 시도의 출발은 불안했다. ‘NH농협 2015∼2016 V리그’ 개막 이전 대학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패했다. 선수들도 ‘새로운 배구가 과연 성공할까’ 속으로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프런트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안 되더라도 감독이 뚝심 있게 추구해나가도록 많이 응원해달라”고 시즌 초반 주위에 부탁할 정도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여기서 리더의 그릇과 방향성이 중요하다. 최 감독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차츰 성과가 나오자 구성원들이 스스로 달라졌다. 세상은 리더의 올바른 판단과 미래를 보는 혜안을 요구한다. 지금 힘들어도 함께 성공하겠다는 의지와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을 원한다. 현대캐피탈은 그런 면에서 복을 받았다.


최태웅 감독의 눈, 단점보다 장점 먼저 찾다


● 구성원이 같은 생각으로 한 방향을 보게 만드는 공감과 발효능력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은 처음으로 ‘봄배구’에 나가지 못했다. 당시 멤버 구성과 올 시즌구성에서 큰 차이는 없다. 선수들 가운데 베테랑 권영민이 나갔고 노재욱이 들어온 것이 변화의 전부다. 5라운드부터 투입된 신영석은 시즌 외 전력이었다. 외국인선수는 3시즌전 LIG손해보험에서 실패라는 낙인이 찍혔던 오레올 까메호였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구성원이지만, 이처럼 한 시즌 만에 전혀 다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최태웅 감독은 구성원의 역량을 결집해 단순한 산술적인 합산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스포츠의 특성이다. 현대캐피탈은 최근 경이적인 14연승행진을 펼치며 24승8패, 승점 69로 디펜딩 챔피언 OK저축은행(21승11패·승점 66)을 2위로 끌어내리고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최 감독이 선수들의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린 비결 가운데 하나는 ‘눈’이다. 구성원의 능력을 정확히 진단했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찾았다. 그동안 경기에 뛰지도 못했고, 그래서 능력을 보여줄 기회도 없었던 선수들은 새로운 감독 밑에서 깨어났다. 그 과정에서 최 감독은 많은 동기부여를 했다. 흔히 소통을 많이 얘기하지만, 그보다 한 단계 위가 공감이다. 일방적인 의사 전달이 아니라, 서로가 수평적으로 마음을 터놓고 의사를 교환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공감 능력이 젊은 감독에게 있었다. 주눅이 들어 스스로의 능력을 알지도, 찾아내지 못했던 선수들은 동기부여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았다. 선수들의 마음을 보듬고 먼저 껴안았던 감독은 각자 능력에 맞춰 임무도 줬다.

가장 완벽한 리더십의 상징은 종교라고 했다. ‘그 분이라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종교다. 최 감독은 공감을 통해 감독의 어떤 지시도 선수들이 귀 기울이게 했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게 만드는 힘도 만들어냈다. 이제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감독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창의적인 플레이를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조직을 경영서(톱 리더의 조건·권광영 저)에선 ‘구성원의 능력이 발효된 상태’라고 했다. 발효조직은 1+1의 단순한 결과를 넘어서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수치까지 결과를 만들어낸다.


● 진정한 리더를 만들어내는 외부환경과 좋은 리더의 자격

지난 시즌 실패 후 김호철 전 감독이 스스로 옷을 벗었다. 현대캐피탈을 상징하는 인물의 퇴장이었다. 공백이 컸다. 현대캐피탈은 새로운 선장을 찾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코치 경험조차 없는 베테랑 선수를 감독으로 발탁했다. 구단주의 결단이라고 했다. 구단주는 새 감독과의 첫 면담에서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선수들이 신나게 배구하고 우리만의 특색 있는 플레이를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새 감독의 운신과 생각의 폭을 넓게 만들어줬다.

최태웅 감독은 선수에 대한 전권을 요구했다. 연봉협상도 직접 했다. 천안 훈련장에 있던 단장실을 없애버렸다. 프런트는 훈련 때 얼씬도 못하게 문을 걸었다. 그 바람에 지금 현대캐피탈은 선수단 지원단장만 있다. 최 감독은 프런트와 현장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했다. 그동안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했던 일들이 사라지자,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최 감독은 트레이드와 코치 선정을 통해 베테랑들을 한꺼번에 정리했다. 이를 통해 팀의 중심을 문성민으로 정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복잡한 문제를 사전에 정리한 효과는 시즌 들어나타났다.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훈련은 열심히, 생활은 최대한 편하게’라는 기본 원칙을 변함없이 지켜줬다. 현장의 요구는 즉시 반영됐다. 의사결정 시간이 속공보다 빨랐다. 선수단을 중심으로 모든 일이 돌아가면서 프런트는 내심 걱정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일을 안 해도 되는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일이 줄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결과가 변화의 효과를 보여준다. 그동안 많은 팀의 프런트가 선수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해왔다는 증거다. 남자프로배구 3강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과 프런트의 역할 분담 과 존중이 좋은 팀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올바른 팀 문화가 있는 팀 ▲감독의 말을 믿고 따르는 선수들의 생각과 열정이 코트와 훈련장에서 보이는 팀이 그것들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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