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SK 최승준, 박병호 정의윤이 걸은 길 위에 서다

입력 2016-05-2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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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승준은 12일 이후 홈런 4방을 치며 ‘거포 본능’을 발휘하고 있다. SK는 타자친화적인 홈구장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맞춰 정상호의 FA보상선수로 최승준을 선택했고, 만년 거포 유망주 최승준은 삼진의 공포를 점차 극복해가며 홈런포의 시동을 걸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최근 8경기 대타만루홈런 등 4홈런
시범경기 ‘삼진 딜레마’ 깨고 폭발
“편하게 하라는 의윤이 형 큰 도움”


SK는 KBO리그 최고의 타자친화적 구장이 된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맞춰 선수단 구성을 진행했다. 지난해 LG와 트레이드로 정의윤(30)을 영입한 게 그 시작이었다. 정의윤은 기대 속에서 2011년 넥센 트레이드 후 리그 최고의 4번타자로 자리한 LG 입단동기(2005년) 박병호(30·미네소타)와 닮은 길을 걷고 있다.

시즌 종료 후 LG로 FA(프리에이전트) 이적한 정상호(34)의 보상선수로 최승준(28)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소위 ‘탈LG 효과’는 홈런이 가장 나오기 힘든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거포 유망주들이 규모가 작은 곳으로 옮기면서 극대화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LG에서 개막전 4번타자로 출발했으나 8경기서 타율 0.077(26타수 2안타)의 극심한 부진 끝에 1군에서 사라진 최승준을 SK는 ‘제2의 정의윤’으로 낙점했다.


삼진이 만든 딜레마, 첫 홈런으로 잡은 터닝포인트

그러나 최승준은 SK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3월 시범경기에서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당초 김용희 감독의 타선 구상 속에서 지명타자 자리는 최승준의 몫이었다. 그러나 시범경기 15경기서 타율 0.100(40타수 4안타)·2홈런·3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특히 삼진이 전체 타석의 절반이 넘는 25개나 나왔다. 결국 더 이상 1군에서 버티지 못하고 개막 3일 만에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지난달 20일 1군에 복귀한 뒤 제한된 출장기회 속에서 절치부심하던 최승준은 시즌 5번째로 선발출장한 12일 문학 두산전에서 장원준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날렸다. 이 홈런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최승준은 “자신감이 생겼다. 홈런을 치려고 노린 구종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TV로 다시 보니 시범경기와 스윙이 완전히 달라져 있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동안 잃어버렸고, 무너졌던 것들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는 “2군에 내려가 있을 때도 홈런이 나왔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달라져야 했다. 1군에 돌아온 뒤 정경배 타격코치님과 캠프 때 했던 걸 다시 찾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방망이를 너무 꽉 잡는 것부터 바꾸기 시작해 캠프 때 모습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시범경기 이후로 무너진 이유도 깨달았다. 최승준은 “삼진이 많이 나오면서 점점 더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하루는 이 폼으로 해보고, 다음날은 또 다른 폼으로 해보다가 내 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멘붕(멘탈붕괴)’ 상태였다”며 아쉬워했다.


짜릿했던 대타 초구 만루홈런, 좋은 기억 쌓는 과정

터닝포인트를 기회로 만든 건 최승준 본인이었다. 18일 문학 롯데전 7회말 무사 만루에서 대타로 나와 상대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초구에 만루홈런을 때려냈다. 최승준도 데뷔 후 가장 짜릿한 손맛을 느꼈다.

그는 “전에 늦었던 타이밍이 맞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홈런이었다. 몸에 힘을 빼고 맞혔는데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2014년 데뷔 첫 홈런 이후로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이튿날 첫 타석 홈런, 그리고 3연속 선발출장한 21일 광주 KIA전 홈런까지. 최승준은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모습이다. 그는 “난 2군 생활을 오래 했다.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 조금씩 쌓아가는 과정”이라며 활짝 웃었다.


● 정의윤이 걸은 길에 선 최승준, “내 스윙을 하겠다!”

SK로선 최승준이 ‘제2의 정의윤’이 되길 바란다. 2015년 정의윤이 있었다면, 올해는 최승준이다. 최승준에게도 정의윤은 큰 힘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야구 자체를 즐기고 있는 정의윤의 모습이었다. 이적 후 편하게 야구하는 선배를 보며 그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SK로 올 때부터 ‘(정)의윤이 형이 잘했으니 반만 따라가자’는 목표를 잡았다. 형은 LG 때부터 워낙 좋은 선수였다”며 “캠프 때부터 팀에서 형과 같은 조에서 타격훈련을 하도록 해주시는 등 배려해줬다. 형이 ‘소극적으로 하지 마라’, ‘편하게 해라’는 식의 조언을 해줬고, 형을 보고 많이 배웠다”고 털어놨다.

이제 정의윤처럼 자리를 잡을 일만 남았다. 최승준은 “주변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거기에 빠져버리면 안 되겠더라. 야구할 날이 더 많이 남지 않았나”라며 “대타로 한 타석 나갈 때가 많은데 내 스윙을 못하고 갖다 맞히려 해선 안 되겠다는 걸 느꼈다. 누구나 완벽한 타자는 없다. 여전히 난 보완할 점이 많다. 내 스윙은 장타가 나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신감을 갖고 내 스윙을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득 5년 전 박병호와 지난해 정의윤이 떠올랐다. 모두들 ‘내 스윙’이라는 그 단어 한 개와 자신감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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