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친구] 치어리더 박기량 “등번호도 같은 10번…내가 ‘고고스’의 이대호”

입력 2017-09-21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치어리더 박기량이 ‘진짜’ 야구에 빠졌다. 여자 연예인야구단 고고스프레밀리의 유니폼을 차려입은 박기량이 자신의 분홍색 배트를 들고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롯데자이언츠 치어리더 박 기 량

팀 내 최장신…팔다리가 길어 1루수 맡아
롯데 이대호와 같은 등번호·같은 포지션

평창조직위와 친선전서 3안타 ‘인생경기’
그날 허벅지 근육 찢어져 한 달 넘게 고생

치어리더협회 추진…후배들 지원도 앞장


여자연예인야구단 ‘고고스 프레밀리’의 훈련 시작 30분 전. 치어리더 박기량(26)은 이미 정갈히 유니폼을 차려입고, 텅 빈 훈련장에서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상경했을 그에게 “왜 이렇게 빨리 도착해 있느냐”고 물으니 “치어리더 팀장 일을 오래 하며 일찍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됐다”는 모범적인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한편으론 잔디 위를 서성대는 그를 보며 ‘한시라도 빨리 야구공을 손에 쥐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하고 짐작해본다.

치어리더 박기량.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진짜’ 야구의 맛을 알다

야구와의 새로운 인연은 시구로 시작됐다. 2년 전 남자연예인야구단 ‘조마조마’의 시구자로 초청받은 것을 계기로 야구의 진짜 재미를 알았다. 요즘은 자나 깨나 야구 생각뿐이다. 매주 월요일 서울에서 공식 팀 훈련을 진행하는데, 부산에 사는 박기량은 바쁜 일정으로 훈련에 참석하지 못하는 날도 더러 있다. 이런 날이면 소속사 김홍석 대표와 함께 캐치볼을 한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주말에는 김 대표가 뛰는 사회인 야구단의 경기에도 따라간다. 박기량은 “따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서울 훈련에 못 오면 부산에서라도 보충 연습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박기량의 서울 훈련에 동행하다 아예 ‘고고스 프레밀리’의 코치로 영입을 당했(?)다.

신장 176cm의 박기량은 팀 내 최장신이다. 팔다리가 길어 자연스레 1루수를 맡게 됐다. 다행히 적성에도 맞다. 그는 “아직 공이 멀리 안나간다. 내야는 수비 반경이 더 넓다. ‘1루에서 공이라도 잘 잡자’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이어 “야구를 실제로 해보니 너무 어렵다. 머리도 좋아야 하고…. 선수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실제 시합에 나선 것은 불과 4차례지만, 벌써 인생경기도 치렀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의 친선 경기에서 4타수·3안타·1볼넷·1도루를 기록했다. 아마추어 경기라지만, 프로 선수들에게서도 나오기 어려운 기록이다. “내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고 떠올리던 그는 “평소에 전력질주를 할 일이 별로 없는데, 그날 허벅지 근육이 찢어졌다. 그 다리로 치어리딩을 한다고 한 달을 넘게 고생했다”면서도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치어리더 박기량.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든든한 ‘10번’이 될게요!

투박한 유니폼을 입고도 감춰지지 않는 박기량의 맵시에 감탄하던 중 자연스레 그의 등에 눈길이 갔다.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10번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10번은 거포형 타자들에게 주어지는 번호다. 그에게 등번호의 의미를 묻자 할 말이 많다는 듯 눈이 커진다. “롯데를 상징하는 이대호(35) 선수의 등 번호다”. 특히 롯데에서 10번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대호가 이 번호를 달고 타격 7관왕에 오르는 등의 대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런 엄청난 숫자를 선택한 것을 보면 박기량도 제 몸에 흐르는 롯데의 피를 속일 수 없는 듯했다.

등번호 10번을 고르기까지 구구절절 사연도 깊다. 이전에는 본인이 응원하는 황재균(30·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3번을 달았다. 야구를 시작하던 때 황재균의 글러브를 받는 특별한 인연도 한 몫 했다. 그러나 황재균은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등번호를 1번으로 바꿨다. 이에 박기량 역시 올해 고고스 프레밀리가 재창단 되는 과정에서 13번을 동료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이대호의 10번이다. 그는 “마침 이대호 선수가 나와 같은 1루를 맡고 있다. 내겐 굉장히 의미 있는 번호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마치 자신이 진짜 ‘조선의 4번 타자’가 된 것처럼.

야구 실력은 이대호를 넘볼 수 없다 하더라도 팀 내 역할만큼은 그를 꼭 닮았다. 박기량 또한 제 팀에서 든든한 ‘언니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치어리더 팀을 직접 이끌어 온 지 오래라 이런 역할이 어느덧 자연스러워졌다. 훈련 시간을 지키지 않는 동생들에게는 “빨리 좀 다니자”며 쓴 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스스로도 “선수로서는 어떻게 감히 이대호를 롤 모델로 삼겠나. 다만 나도 나름 팀 내에서는 든든한 존재인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치어리더 박기량.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박기량의 이름으로

치어리더로 지내온 10년. 17세에 일을 시작해 단 한번의 휴식 없이 달려왔고, 어느덧 업계에서는 최고참이 됐다. 이제 막 치어리더로 데뷔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그저 귀엽기만 하다. 또 한편으론 걱정도 크다. 그는 “‘벌써 이만큼 나이를 먹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10년이라는 것은 정말 의미 있지만, 고민도 많은 시기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이제야 나름 치어리더 대기실이 생기는 등 처우가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아쉬워했다.

박기량은 후배들이 더욱 빛을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려 한다. 이를 뒷받침해주기 위해 치어리더 협회의 설립도 준비 중이다. 그는 “나도 가수로서 앨범도 내보고, 행사 진행도 해보면서 다른 것들에 도전을 많이 해봤다”며 “후배들도 소질만 있다면 진행자, 가수, 악기 연주자 등 다방면으로 나가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소망했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