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父 편지] “동국아, 지금처럼만 한 점 후회 없도록 해라”

입력 2017-11-0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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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남 씨가 손자손녀를 품에 안고 밝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 | 이길남 씨

네가 골도 넣고 우승도 하길 바랐는데
거짓말처럼 그리 골이 나올 줄 몰랐다
언제까지 뛸 거냐고 물으면 넌 그랬지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 내려놓겠다”고
이제 다음도 조금씩 준비하길 바란다


이동국(38·전북현대)은 K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로 꼽힌다. 그는 지난달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1부리그) 2017’ 36라운드 홈경기에서 2가지 기쁨을 동시에 맛봤다. 사상 첫 개인통산 200골을 완성했고, 전북 유니폼을 입고 2009∼2011∼2014∼2015년에 이은 통산 5번째 정상에 우뚝 섰다. 흩날리는 꽃가루를 맞으며 모두가 격한 환희에 젖어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을 때 관중석 한구석에서 잔잔한 미소를 보낸 이가 있었다. 이동국의 부친 이길남(67) 씨였다. “오늘은 맥주 한 잔 들이켜야 잠이 올 것 같다”면서 흐뭇해했다. ‘축구선수’뿐 아니라 요즘 ‘대박이 아빠’ 또는 ‘5남매 아빠’로 대중에게 친숙해진 이동국도 누군가의 아들이다. 이길남 씨가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들을 향한 마음의 편지를 스포츠동아에 보내왔다.

To. 아들 동국이

아들아, 머스마들끼리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번에는 한 마디 하고 싶네. 마이 고생했다.

앳된 얼굴로 프로 데뷔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리 시간이 흘렀네. 거의 매 경기 따라다니다 보니 나도 할아버지가 됐다. 다행히 열정은 식지 않더구나. 전주도 가고, 원정도 따라다니고 그게 소소한 재미가 아닌가 싶다. 아비가 스탠드에서 소리 지르고 용틀임 해줘야 아들이 뛸 맛나지 않겠나.

네가 세운 기록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봤다. 70(골)-70(도움)부터 200골, 조금씩 늘려가는 출전 횟수까지 대단히 소중한 자산일 게다. 물론 너도 알겠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K리그에 새로 들어오는 젊은 공격수들이 꾸준히 남아주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네 기록들이 또 과거로 흘러가겠지.

그래도 아비로서 고맙고 또 고맙다. 100단위하고, 200단위하고는 느낌부터 다르지 않냐. 네가 축구화에 구멍이 나도록 뛸 때 나도 마음에 구멍이 나도록 함께 뛰고 마음을 졸였다. 200번째 득점을 완성하고, 이제 상황이 정리됐다 싶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장면 하나가 있었다.

이동국이 써낸 화려한 전설 뒤에는 아낌없이 뒷받침한 가족들이 있었다. 특히 아버지 이길남 씨는 누구보다 가슴 졸이며 아들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완주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1999년에서 2000년도로 해가 바뀐 그 때다. 새천년 맞이한다고 ‘재야의 종’ 행사에 타종자로 뽑힌 네가 참여했었지. 벌써 17년이 흘러버렸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기쁜 날이 또 있을까. 부모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한 순간도 자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만하면 잘해왔고, 당당할 수 있다.

솔직히 제주전을 앞두고 마음을 많이 졸였단다. 막연히 ‘골도 넣고 전북이 우승하면 얼매 좋겠노’ 했는데, 거짓말처럼 그리 골이 나올 줄 몰랐다. 제대로 봤는지 모르지만 눈 깜짝할 새 득점이 나오데. 쏜살같이 흐른 세월처럼 말이다.

아들아, 간간이 내가 묻는 게 있지. 미안하게도 수년째 반복하는 물음을 또 하네. 언제까지 뛸 거냐고. 그럴 때면 넌 그랬지.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 내려놓겠다”고. 물론 은퇴는 철저히 네 몫이다. 스스로 최선의 길을 정하고, 최고의 판단을 하길 바란다. 항상 지금처럼 말이다. 단, 한 점 후회는 없도록 해라.

다만 아비 자격에서, 또 네가 백발이 되더라도 아들이니까 이야기하지만 언제까지고 현역으로 남을 순 없으니 다음 인생도 조금씩은 준비하길 바란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 사람을 당할 재간이 없다는 것 잊지 말자. 아이고, 고마 아비가 말이 길었다. 푹 쉬고, 곧 보자.

From 항상 아들을 바라보는 아빠
정리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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