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흥국생명은 어떻게 통산 4번째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나

입력 2019-03-27 2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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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2018-2019 도드람 V리그’ 인천 흥국생명과 김천 도로공사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 경기가 열렸다. 흥국생명이 도로공사를 꺾고 12년 만의 통합우승을 차지한 뒤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7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2018-2019 도드람 V리그’ 인천 흥국생명과 김천 도로공사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 경기가 열렸다. 흥국생명이 도로공사를 꺾고 12년 만의 통합우승을 차지한 뒤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흥국생명은 6일 도로공사와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2세트만 따면 통산 5번째 정규리그 우승 축배를 홈에서 터트릴 수 있었다. 모든 배구팬이 가장 보고 싶어했던 그 경기는 이번 여자부 시즌 시청률 최고를 찍었다.

2세트 막판의 판정으로 심판이 징계를 받았던 그날 흥국생명은 세트스코어 3-1로 졌다. 그 판정이 아니었으면 4-0이 됐을 완패였다. 경기장을 찾았던 흥국생명의 임원들은 준비해둔 회식자리로 참석하지도 않고 돌아갔다. 준비한 고기가 남아돌았다. 선수들은 울면서 밥을 먹었다. 패배의 충격은 너무 컸다.

다음 날 박미희 감독은 외국인선수 톰시아와 면담을 했다. 도로공사전에서 톰시아는 너무도 무기력했다.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하향세였다. 몸무게도 6kg이나 빠진 터였다. 체력문제에 향수병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톰시아가 제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통합우승이 쉽지 않기에 감독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우선 이해하려고 했다. 먼저 톰시아의 얘기를 들었다. 감독은 “네 어려움을 이해한다. 그동안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남은 것은 챔피언결정전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했다. 톰시아는 “한동안 멘붕 상태였지만 이젠 공격이 안 되면 블로킹과 수비 등 다른 것으로라도 팀을 위해 돕겠다”고 약속했다.


● 봄 배구를 앞두고 우리 것에 먼저 신경 쓴 흥국생명

흥국생명은 9일 현대건설을 꺾고 통산 5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경쟁자보다 시간여유가 있었다. 박미희 감독이 준비기간 동안 “우리 것의 철저한 준비”를 말했다. 팀이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할 때까지 시즌 내내 우리가 잘 해온 것이 무엇이고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자 결론은 쉽게 나왔다.

시즌 MVP가 확실한 에이스 이재영의 역할을 최대한 늘리면서도 다양한 공격루트를 활용해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톰시아의 부활이었다. 김미연의 안정된 리시브도 필요했다. 박미희 감독의 소원대로 도로공사-GS칼텍스의 플레이오프는 3경기를 모두 풀세트의 혈전이 됐다.

그 후유증은 컸다. 김종민 감독이 “내가 머리가 띵할 정도인데 우리 선수들은 오죽하겠냐. 인천 원정버스를 타고 갈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도로공사 선수들은 지쳐있었다. 흥국생명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지친 도로공사를 상대로 이겼지만 고전했다. 4세트 이재영의 결정력을 앞세워 이기기는 했다. 조송화의 연결도 그랬지만 톰시아가 상대방 파튜와 비교하면 결정력에서 차이가 컸다. 김미연도 리시브와 공격에서 흔들리자 정교한 톱니바퀴에서 한두 개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 우려는 2차전 완패로 이어졌다.

27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2018-2019 도드람 V리그’ 인천 흥국생명과 김천 도로공사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 경기가 열렸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선수들의 플레이에 주먹을 쥐며 환호하고 있다.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7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2018-2019 도드람 V리그’ 인천 흥국생명과 김천 도로공사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 경기가 열렸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선수들의 플레이에 주먹을 쥐며 환호하고 있다. 김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시즌 전 IBK기업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이 떠올랐다. 1차전 풀세트 승리에 이어 2차전에서도 첫 세트를 가볍게 따냈지만 이후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던 뼈아픈 기억이었다. 모두들 도로공사의 3차전 우세를 예상했지만 한 차례의 실패를 경험했던 박미희 감독은 준비해둔 카드가 있었다.

미들블로커 김나희의 출전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 2,3세트를 내주고도 뒤집을 정도로 2년 전의 흥국생명과는 달리 이번 시즌의 흥국생명은 선수들이 성장해 있었다. 흥국생명은 필요한 순간 책임을 감당할 정도로 자신도 있고 의지도 넘쳐났던 이재영의 도움으로 우승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었다.

리시브가 살아나면서 팀을 안정시키고 필요한 순간마다 점수를 올려준 김미연의 가세와 조송화의 매끄러운 연결에 도로공사의 경험도 한계가 있었다. 마산제일여고 출신 2년 후배 임명옥과의 수비대결을 벌인 김해란은 역시 팀을 떠받드는 기둥이었다. 지상전에서 그가 궂은일을 도맡자 또 다른 베테랑 김세영과 김나희가 앞에서 도로공사의 강한 미들블로커와 팽팽한 공중전을 했다.

운명의 4차전도 팽팽했지만 박미희 감독이 얘기를 들어줬던 톰시아가 마침내 30득점으로 폭발했다. 이재영은 29득점을 몰아치며 만장일치 MVP가 됐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을 마친 뒤 은퇴를 고민하던 베테랑 김해란에게 첫 우승반지를 끼워줄 수 있었던 것과 박미희 감독이 여성 사령탑으로 첫 프로리그 챔프전 우승감독이 된 것은 흥국생명의 자랑할만한 새로운 역사다.

김천|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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