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이런 미친 축구를 본 적이 있는가”

입력 2019-05-09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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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가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있다. “사람들은 왜 축구에 열광할까”, “400g 축구공의 향방에 왜 전 세계 팬들은 웃음과 눈물로 뒤범벅이 될까”, “손을 쓸 수 없는 불안정성과 상대와 거침없이 부딪치는 원시성이 도드라지는 축구, 세상에서 가장 단순해 보이는 이 종목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오랜 시간 축구담당 기자를 하면서 경험한 수많은 경기는 딱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재미있는 경기와 재미없는 경기다. 똑 같은 90분이 주어지지만,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경기가 있는가 하면 연신 하품만 나오는 졸전도 수두룩하다.

전자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매 순간 요동친다. 누가 이길지 아무도 모른다. 당연히 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떤 결과든 흥분을 감출 수 없게 된다. 후자는 뻔할 뻔자다.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거기엔 어떠한 긴장감도 없다. 그래서 싱겁다.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4강 2차전은 우리에게 극강의 재미를 선사했다. 우리가 왜 축구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줬다.

9일(한국시간) 열린 토트넘(잉글랜드)과 아약스(네덜란드)의 경기는 전반만 하더라도 아약스의 결승행은 확정적이었다. 1차전 원정에서 1-0으로 이긴 아약스는 홈에서 비기기만해도 결승에 간다. 더구나 전반에 2골을 먼저 넣어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축구는 45분이 아니라 90분 경기다. 티켓을 손에 쥔 듯한 아약스는 주변의 예측과 달리 라인을 내리지 않았다. 멋진 경기를 하다 아쉽게 패했을 뿐이고, 손흥민의 토트넘은 그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결국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루카스 모우라가 왼발로만 3골을 몰아쳤다.

누가 이런 결과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런 큰 대회에서 해트트릭을, 그것도 원정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후반 추가시간 5분을 다 소진한 상태에서,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결승골이 터졌다. 불가능이 현실이 되면서 ‘암스테르담의 기적’은 그렇게 완성됐다.

하루 전날엔 ‘안필드의 기적’도 만들어졌다. 1차전 원정에서 바르셀로나(스페인)에 0-3으로 패한 리버풀(잉글랜드)의 결승행 가능성은 희박했다. 핵심 전력도 빠졌다. 하지만 리버풀은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결국 주연이 아닌 조연들이 큰일을 내면서 4-0 대승으로 극적인 결승행이 이뤄졌다.

독일의 전설적인 지도자 제프 헤르베르거는 “공은 둥글다. 경기는 90분이나 진행된다”고 했다. 축구공이 둥글다는 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의미다. 이건 열린 가능성이고, 불예측성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해서도, 또는 포기해서도 안 된다.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를 누가 더 집요하게 쟁취하느냐에 승부가 갈린다. 끝까지 도전하는 자가 이긴다. 객관적인 전력이라는 건 경기 앞두고 그냥 하는 소리다. 예측은 예측일 뿐, 뚜껑을 열어보면 달라진다. 그게 축구고, 그게 매력이다.

우리는 이틀에 걸쳐 스포츠에서만 가능한 최고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아마 당분간은 이런 ‘미친 축구’는 보기 힘들 것이다.

축구와 우리 인생은 닮았다. 인생도 스포츠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 그게 이번 챔스리그 4강전의 기적이 우리들에게 건넨 묵직한 메시지가 아닐까.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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