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우스. 사진제공 | KOVO
권순찬 감독이 공을 들였던 산체스가 순천 KOVO컵 도중 황당한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부터 KB손해보험은 외국인선수로 골머리를 앓았다. 서둘러서 V리그 유경험자 브람을 영입했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사실 브람도 나쁜 선수는 아니었다. 다만 KB손해보험과는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동료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는 점. 훈련 때 코트에 공을 펑펑 내려 꽂으며 힘을 보여줘야 토종 선수들은 “저 친구와 함께라면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브람은 이 부분이 약했다. 설상가상 복근부상도 당했다.
마테우스. 사진제공 | KOVO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가운데 구단은 교체를 생각했다. 전력분석원이 유럽으로 나가서 여럿을 접촉했다. 성과가 없었다. 한 명은 인성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상한 소문이 많이 돌았다. 또 한 명은 자국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KB손해보험이 원하는 때에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단은 마음을 접고 브람과 시즌 끝까지 가기로 했다.
하지만 브람은 그 이후에도 여전히 임팩트가 없었다. 올림픽 브레이크를 앞두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권순찬 감독이 교체를 요청했다. 토종선수들마저 “이제 우리는 시즌 끝”이라고 포기해버리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뻔히 알기에 무슨 수를 써야만 했다. 여러 후보를 찾았다. 마침 마테우스가 생각났다. 산체스가 부상을 당했을 때 접촉했지만 그는 자신이 속한 이탈리아 2부 리그 팀(케마스 라미펠 산타크로체)을 우승시키겠다며 한국행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소속팀이 1부 리그에 올라가면 더 좋은 계약을 맺기로 약속한 상황이라 시즌 초반이었던 그 때는 떠날 이유가 없었다.
마테우스. 스포츠동아DB
고민하던 권순찬 감독이 우연히 외국의 배구사이트를 뒤지다 마테우스 소속팀이 바닥에 있는 것을 봤다. “이제라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접촉했다.
한국행의 또 다른 걸림돌은 아내(아만다)였다. 배구선수 출신으로 마테우스와 같은 팀에서 전력분석을 담당하다 사랑에 빠진 그는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만족하고 있었다. 구단은 집중적으로 설득했다. 권순찬 감독은 마테우스의 젊음(23세)에 방점을 뒀다. 이번에 실력을 제대로 확인한 뒤 팀에 잘 어울린다면 다음시즌까지 함께 갈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전임 단장은 영전하면서 “새 외국인선수 문제만큼은 해결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마테우스와 여자친구의 마음을 간신히 돌렸지만 한국 땅을 밟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필이면 설 연휴와 겹쳤다. 비자를 받으려고 홍콩에서 대기하는 동안에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간신히 1월14일에야 선수등록을 했다. 첫 훈련 때 마테우스가 시원시원하게 공을 후려패자 함께 훈련하던 토종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1월16일 OK저축은행과의 V리그 데뷔전. 마테우스가 높이 뛰어올라 엔드라인 근처로 스파이크를 성공시키자 김학민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이 방송화면에 나왔다. 선수끼리만 알 수 있는 잠재력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권순찬 감독도 “경험이 적을 줄 알았는데 훈련 때보면 ‘이 정도로 했나’ 싶을 정도로 순간순간 놀라는 경우가 많다. 동작을 보면서 ‘더 잘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매력이 있다”고 했다.
권순찬 KB손해보험 감독. 스포츠동아DB
이후 남은 것은 동료들과의 호흡이었다. 시간이 해결할 문제였다. 성격도 좋아 잘 어울렸다. 김정호 등과 동갑내기여서 서로 부담감도 없었다. 무엇이건 받아들이려는 자세 또한 좋았다. 훈련과 경기가 반복될수록 역할은 커졌다. 브람과 함께 할 때 세터 황택의는 중요한 순간마다 김정호와 김학민을 먼저 봤다. 지금은 다르다. 마테우스에게 중요한 공은 먼저 올린다. 한동안 황택의의 낮고 빠른 연결과 마테우스의 타법이 맞지 않는 경우도 노출됐지만 갈수록 호흡은 좋아지고 있다. 왼쪽 오른쪽 두루 공격이 가능하고 파워도 있어 수치가 올라가고 있다.
마테우스는 V리그에 데뷔한 6경기에서 31~25~25~26~38~25득점을 했다. 공격성공률은 59~50~47~48~54~62%다. 보통 외국인선수들은 사전정보가 모자란 한 두 경기는 잘 하지만 다음부터는 상대팀에서 현미경 분석을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수치가 떨어진다.
마테우스는 4일 OK저축은행과의 5라운드 수치가 가장 높았다. 이전 2경기는 리그 최하위 팀 한국전력 경기였다. 아직 리그 최상위 팀, 특히 블로킹이 좋은 팀과의 대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그런 면에서 8일 현대캐피탈과의 천안원정이 팀에게나 마테우스의 미래 V리그 생활에도 중요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마테우스는 KB손해보험에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