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의 가치와 역지사지(易地思之)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2-01-19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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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지난해 12월 5일 OK금융그룹과 일요일 원정경기에서 삼성화재는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했다. 먼저 2세트를 따내 손쉽게 3-0 완승을 거둘 듯했으나 뒤집어졌다. 뼈아팠다.


숙소로 돌아온 고희진 삼성화재 감독은 저녁 때 신장호, 정성규, 김우진 등 3명을 따로 불렀다. 레프트 포지션의 프로 2~3년차 젊은 선수들과 술잔을 앞에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삼성화재는 러셀과 황경민이 좌우에서 버텨주긴 하지만, 레프트의 다른 한 자리가 고민거리였다. 평소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훈련 때도 별 말이 없던 젊은 선수들은 술잔이 돌자 많은 얘기를 했다.

삼성화재 신장호, 정성규, 김우진(왼쪽부터). 사진제공 | KOVO


고 감독이 삼성화재의 제4대 사령탑에 오른 뒤 단체회식을 해본 적은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함께 모일 기회가 사라진 탓이다. 그는 삼성화재의 전성기를 돌아봤다. “선수들끼리 자주 어울렸다. 숙소 앞 커피전문점에 모여 몇 시간씩 수다를 떨었다. 후배들의 연애상담도 해주고, 서로 고민도 털어놓았다. 가끔은 밤에 선배들이 힘들어하는 후배를 데리고 나가 술도 사주면서 하소연을 들어줬다. 취한 후배가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면 정말로 다음날 새벽 술이 덜 깬 채로 훈련장에 나가 열심히 운동을 했다”고 기억했다.


철학적인 말을 자주 하는 고 감독은 ‘같이’의 가치를 언급했다. 숙소생활이 많은 선수들은 가족보다 동료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다.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알아가려는 노력이다. 동료가 지금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는지 알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다. 힘든 훈련과 승패의 스트레스로 쌓이는 불만도 상대방의 입장에 서면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배구는 코트에 서는 6명의 마음을 모아야 이기기 쉬운 팀 스포츠다. 그래서인지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자주 언급한다. 서로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수록 그 팀은 단단해진다. 시즌 초반 고전했던 우리카드가 같은 구성원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것도 결국 이 부분 어딘가에서 해법을 찾아서다.

삼성화재 고희진 감독. 스포츠동아DB


코로나19 시대. 거리두기와 방역지침을 따라야 하는 환경 탓이겠지만, 지금 선수들은 불행하다. 일단 숙소의 방에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고립된 선수들은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을 도와줄 사람도 찾지 못한다. 고 감독은 그날 술자리에서 “3명 중 열심히 한 선수가 주전이다”고 선언했다.


속내를 털어놓은 그 자리에서 자극과 격려를 받았던 이들 중 정성규가 가장 먼저 각성했다. 지난달 12일 한국전력을 상대로 큰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안겼다. 삼성화재 구단 관계자는 “이런 결과라면 매일 술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물론 술보다는 다른 요인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요즘 모 팀에서 소통에 큰 장애가 생겨 구단이 고민 중이다. 상상외로 심각한 수준이다. 서로의 이해가 부족해서 나왔겠지만 ‘녹취’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면, 신뢰에 큰 손상이 간 듯하다. 더 이상의 얘기가 새어나오지 않고 잘 수습하기를 바란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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