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이정후의 모습은 출발부터 유쾌했다. 16일(한국시간) 홈구장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입단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신을 당당히 ‘바람의 손자’로 표현하며 MLB에서도 힘차게 질주할 것임을 다짐했다. 구단도 이튿날 SNS로 이정후의 반려견까지 소개하며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진출처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페이스북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바람의 손자’ 이정후(25)를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17일(한국시간)에는 구단 공식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정후의 반려견 ‘까오’까지 소개하며 “우리는 이정후만 영입한 게 아니다”라는 익살스러운 글까지 게재했다.
KBO리그 타격왕 출신인 이정후는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MLB 진출에 성공했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명문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에게 6년 1억1300만 달러(약 1473억 원)짜리 초대형 계약을 제시했고, 이정후는 메디컬 테스트까지 가뿐히 통과했다.
이정후는 16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입단 기자회견에서 팬들에게 첫 공식 인사를 전했다. 이날 회견에는 샌프란시스코 파르한 자이디 사장과 이정후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동석했다. 또 회견장 가장 앞자리에선 아버지 이종범 전 LG 트윈스 코치와 어머니 정연희 씨가 자리해 아들의 입단식을 지켜봤다.
이정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헬로 자이언츠. 내 이름은 이정후다. 한국에선 ‘바람의 손자’로 불렸다”라며 미소를 보였다.
이정후가 말한 ‘바람의 손자’는 아버지 이 코치의 ‘바람의 아들’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이 코치는 선수시절 KBO리그 통산 1706경기에서 타율 0.297, 194홈런, 730타점, 1100득점, 510도루의 걸출한 성적을 남긴 ‘레전드’다. 놀라운 타격 정확도와 함께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휘저어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을 얻었다.
사진출처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페이스북
야구인 2세로 KBO리그에서 활약을 이어온 이정후에게 ‘바람의 손자’란 별명은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바람의 손자를 영어로 표현(grandson)하니 멋있는 것 같다”며 오히려 더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였다. 이정후 특유의 외향적 면모가 이날 자기소개부터 돋보였다.
MLB를 경험한 국내선수들 다수는 MLB 진출의 필수 성공조건을 ‘적응’으로 꼽는다. 자신의 기량을 야구의 본고장에서 발휘하려면 자신감 있는 모습을 우선 갖춰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겸손의 미덕’을 중시하는 국내선수들은 이 대목에서 대부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KBO리그에서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난 이정후는 지금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가득한 모습이다. 이는 MLB 적응에 상당한 도움이 될 요소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모자와 유니폼을 갖춰 입은 뒤 “잘 생겼나요?”라는 한 마디로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활달한 모습으로 무장한 ‘루키’의 등장은 샌프란시스코에도 분명 큰 활력소다. 첫 인사부터 MLB 팬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바람의 손자’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