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육상 전설 전민재, 발가락으로 튼 음성 편지…“나고야가 마지막”

입력 2024-09-05 10: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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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재(오른쪽)가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 T36 결선에 출전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전민재(오른쪽)가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 T36 결선에 출전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레이스를 마치고 경기장 밖 바닥에 앉은 전민재(47·전북장애인육상연맹)는 취재진 앞에서 편지를 빼곡히 적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엄지발가락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다섯 살 때 원인 모를 뇌염으로 뇌병변 장애가 생긴 그는 단어를 발음하거나 글씨를 쓰기 힘든 상태지만,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소통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에 쓴 편지를 음성으로 변환해 취재진에게 들려주다 연신 눈물을 훔쳤다. 4월 눈을 감은 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구간에선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전민재가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 T36 결선이 끝나고 경기장 밖 바닥에 앉아 스마트폰에 쓴 음성 편지를 틀고 있다. 파리|공동취재단

전민재가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 T36 결선이 끝나고 경기장 밖 바닥에 앉아 스마트폰에 쓴 음성 편지를 틀고 있다. 파리|공동취재단

전민재는 “자나 깨나 항상 내 걱정과 ‘우리 (전)민재 최고’를 외치며 응원해주시던 아버지가 지금은 곁에 안 계시고 하늘에서 보고 계실 텐데, 아버지께 메달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패럴림픽이 될 것 같아서 메달을 꼭 따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해드리고 싶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2008년 베이징대회부터 5회 연속 패럴림픽 출전으로 장애인 육상을 이끈 그는 지난해 2022항저우아시안패러게임을 마치고 은퇴를 고민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파리까지만 뛰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펼쳐진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스포츠 등급 T36) 결선에서 14초95의 기록으로 7위에 올랐다.

전민재(오른쪽)가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 T36 결선이 끝난 뒤 함께 경쟁한 뉴질랜드의 대니엘 애이치슨을 끌어안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전민재(오른쪽)가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 T36 결선이 끝난 뒤 함께 경쟁한 뉴질랜드의 대니엘 애이치슨을 끌어안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역주를 마치고 난 뒤에는 한 번 더 도전하겠다고 결심했다. 전민재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전민재는 딱 2026나고야·아이치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까지 하려고 한다”며 “그때가 정말 마지막이다. 트랙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가 전민재라서다. 그래서 은퇴하지 않으려고 한다. 딱 그때가 마지막이다. 그때까지 전민재 선수 기억해주시라”고 말했다.

전민재는 또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연습의 연습을 거듭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훈련했다”며 “마음속으로 매일 ‘나는 할 수 있다’를 되뇌며 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록이 안 나올 때면 ‘이제 선수생활은 그만해야 할까’라는 고민과 슬럼프에 빠지고, 기록이 잘 나오면 ‘열심히 하니 내가 연습한 만큼 좋은 기록으로 보상받는 것’ 같고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이날 전민재는 다시 한번 가능성을 입증했다. 예선에선 14초69를 기록해 2019년 두바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개인최고기록 14초68에 바짝 근접했다.

전민재가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 T36 결선이 끝나고 취재진에게 보여준 음성 편지 내용. 파리|공동취재단

전민재가 5일(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랭스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육상 여자 100m T36 결선이 끝나고 취재진에게 보여준 음성 편지 내용. 파리|공동취재단




파리|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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