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수비수 김민재(4번)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과 2026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1차전을 0-0으로 마친 뒤 주장 손흥민과 함께 아쉬워하고 있다. 상암|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한국축구가 갈가리 찢어졌다. 희망의 붉은 함성 대신 거센 야유와 서글픈 침묵이 2026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첫 경기를 관통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국가대표팀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과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1차전 홈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만족스러운 부분이 전혀 없었다. 전술, 전략, 투지 모두 상대에 뒤졌다.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로 인해 소속팀조차 없는 선수들이 즐비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6위 팔레스타인을 맞아 90분 내내 고전했다.
대표팀은 싸늘한 시선과도 싸웠다. 숱한 행정 난맥상을 반복한 대한축구협회(KFA)와 정몽규 회장, 잔류 약속을 깨고 시즌 중 울산 HD를 떠나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을 향한 비난이 경기 내내 계속됐다. 이는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급기야 대표팀 공식 응원단 ‘붉은악마’와 대표선수의 충돌로 번졌다. 팔레스타인의 예상 밖 공세에 적잖이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은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는 붉은악마 응원석을 향해 큰 팔동작으로 야유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허리춤에 두 팔을 올리고 “제발 부탁드린다”고 외쳤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필두로 선수 전원이 모여 감사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던 김민재는 취재진과 마주한 믹스트존에서도 “응원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우리가 처음부터 못한 건 아니었다. 못하길 바라며 응원하신 부분이 아쉬웠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붉은악마가 6일 “선수와 팬들의 설전은 없었다. 우린 어떠한 순간에도 ‘못하길 바라고’, ‘지길 바라고’ 응원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문을 내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7일 출국하면서도 대표팀의 표정은 딱딱했다.
대표팀은 10일(한국시간) 무스카트에서 오만과 원정 2차전을 치른다. 1차전에서 승점 3을 놓친 터라 부담이 훨씬 커졌다.
김민재의 돌발행동이 옳다고 볼 수 없으나, 조금은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소속팀 경기를 뛸 때마다 과할 정도로 혹독한 비난에 시달려왔다. 독일 매체들은 극성스럽고, 홈팬들도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대놓고 차별하진 않아도 유럽권 선수들과 다른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듯한 인상이다. 과거 함부르크~레버쿠젠에서 뛴 손흥민도 독일과 2018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득점한 뒤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은 감정 컨트롤이 필요하다. 수비수는 최대한 침착해야 한다. 실수가 치명적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치다. 주변의 실책도 품어야 하고, 너그러워야 한다. 화를 내기보다 감싸 안았을 때 존중을 얻는 법이다. 최악의 위기에 내몰린 홍 감독은 물론 대표팀에도 ‘듬직한’ 김민재가 필요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