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코르다가 키우고, 윤이나가 거둘 때다 -LPGA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관전기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19〉

입력 2024-11-25 17: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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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지노 티띠꾼이 25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 티뷰런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네이플스(미국) ㅣ AP 뉴시스

태국의 지노 티띠꾼이 25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 티뷰런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네이플스(미국) ㅣ AP 뉴시스


2019년 여름, 런던 근교인 워본 골프클럽에서 벌어진 AIG위민스오픈에서 고진영의 플레이를 봤다. 고진영은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LPGA 무대에 그녀를 능가할 선수가 당분간 나오기 어려워 보였다. 해외 대회에 처음 출전한 일본의 히나코 시부노가 우승했지만, 그녀는 고진영만큼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가 골프계를 강타하기 전까지 고진영은 적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코로나19 와중에 골프가 재개되었지만, 고진영은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투어에 합류했고, 그녀의 기량은 이전처럼 압도적이지 못했다. 다른 한국 선수들의 기량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떨어졌고, KLPGA 선수들의 LPGA 진출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 선수들의 자리를 미국, 태국, 일본과 중국 선수들이 차지했다. 출신지가 다양해지고, 넬리 코르다와 같은 슈퍼스타가 등장하면서 상금 규모는 많이 증가했다. LPGA가 발표한 2025년 총상금 규모는 1833억 원으로 2021년 대비 90% 증가했다. 상금 규모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에 한국 선수들의 우승 횟수가 줄어든 것은 안타깝다.

◆최근 10년간 LPGA 투어 한국선수 우승 일지

연도
우승자
2015년(15승) 한국계 6승
총 21승
최나연(2승) 김세영(3승) 리디아 고(고보경·5승) 양희영 박인비(5승) 김효주 이민지 전인지 최운정 안선주
2016년(9승) 한국계 8승
총 17승
김효주 장하나(3승) 노무라 하루(문민경·2승) 김세영(2승) 리디아 고(4승) 이민지(2승) 신지은 전인지 김인경
2017년(15승) 한국계 2승
총 17승
장하나 양희영 박인비 이미림 유소연(2승) 대니얼 강(강효림) 박성현(2승) 이미향 고진영 지은희
2018년(9승) 한국계 5승
총 14승
고진영 미셸 위(위성미) 박인비 지은희 리디아 고 박성현(3승) 이민지 애니 박(박보선) 유소연 김세영 전인지 대니얼 강
2019년(15승) 한국계 2승
총 17승
지은희 양희영 박성현(2승) 고진영(4승) 이민지 김세영(3승) 이정은6 허미정(2승) 대니얼 강 장하나
2020년(7승) 한국계 2승
총 9승
박희영 박인비 대니얼 강(2승) 이미림 김세영(2승) 김아림 고진영
2021년(7승) 한국계 2승
총 10승
박인비 리디아 고 김효주 고진영(5승) 이민지
2022년(4승) 한국계 6승
총 10승
대니얼 강 리디아 고(3승) 고진영 김효주 이민지(2승) 지은희 전인지
2023년(5승) 한국계 3승
총 8승
고진영(2승) 그레이스 킴(김시은) 이민지(2승) 유해란 김효주 양희영
2024년(3승) 한국계 3승
총 6승
리디아 고(3승) 양희영 유해란 김아림

2019년에 15승을 달성한 이후로 한국 선수들의 우승 횟수는 매년 줄어들었지만, 시즌 최종전에서는 우승 명맥을 유지했다. 김세영이 2019년에 우승한 이후로 고진영이 2020년과 2021년에, 양희영이 2023년에 우승했다.

올해 LPGA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태국의 지노 티띠꾼이 우승하면서, 우리 선수의 우승 명맥이 끊겼다. 티띠꾼은 17번 홀 이글과 18번 홀 버디를 기록하며 4라운드 내내 신들린 퍼팅을 자랑하던 엔젤 인(26·미국)을 극적으로 물리쳤다. 가장 큰 대회에서 마지막 피니시를 이렇게 극적으로 할 수 있는 LPGA 소속 한국 선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티띠꾼은 슈퍼스타의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



슈퍼스타는 공격적이어야 하며,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고, 미소가 아름다워야 한다. 아놀드 파머, 세베 발레스테로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와 넬리 코르다가 그런 선수다. 우리 골프 팬에게 상대적으로 낯선 세베 발레스테로스는 1976년에 로열 버크데일에서 개최된 디오픈에 19세의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그는 잭 니클라우스와 톰 왓슨보다 좋은 기록을 보이며 2위를 차지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온 무명의 선수였지만, 골프에 관하여 자존심이 높던 영국 골프 팬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플레이, 골프에 대한 열정, 밝은 미소 속에 보이는 그의 카리스마에 모두가 매료되었다. 그의 국적이나 출신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로리 매킬로이는 올해 DP월드투어 투어챔피언십을 우승하면서 세베 발레스테로스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유럽의 골프 팬은 세베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에 대해 말할 때는 목이 멘다. ‘왜 세베를 그렇게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 어느 주말 골퍼는 이렇게 답했다. ‘세베 이전에 골프는 지루한 경기였다. 그가 등장하면서 골프가 역동적으로 변했다. 그의 카리스마와 미소, 단순하면서도 열정적인 승리 세리모니가 좋았다’라고.

어떻게 보면 한없이 지루한 경기인 골프는 세제 발레스테로스와 같은 스타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스타로 인해 골프는 인기를 얻고, 시장을 얻는다. 그들이 키운 상금 규모의 혜택을 오늘의 프로선수들이 누린다.

지노 티띠꾼이 25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 티뷰런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버디 퍼트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감격스러워 하고 있다. 네이플스(미국) ㅣ AP 뉴시스

지노 티띠꾼이 25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 티뷰런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버디 퍼트로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감격스러워 하고 있다. 네이플스(미국) ㅣ AP 뉴시스


LPGA 무대를 키운 것은 애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박세리, 로레나 오초아 같은 선수들이다. 오늘날에는 리디아 고와 넬리 코르다가 시장을 키우고 있으며, 덕분에 LPGA 2025년 상금은 2024년 대비하여 12.5%나 증가했다.

커진 잔치에 참여할 우리 선수가 필요하다. LPGA에 윤이나 선수가 도전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세베 발레스테로스가 그러했듯이 윤이나가 창의적이고 공격적이며 카리스마가 넘치고 친절하다면, 골프팬은 그녀의 국적이나 과거의 흠결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LPGA는 판이 커졌고, 과실이 풍부하다.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우승 상금은 400만 달러(약 56억 원)였고, 2위 상금은 100만 달러였다. 1위와 2위의 상금 차이가 역대급으로 벌어졌고, 남자 프로무대를 통틀어도 이번 대회보다 1, 2위간 상금 격차가 큰 대회는 페덱스컵 PGA투어챔피언십 뿐이다. 티띠꾼은 한 타의 가치가 300만 달러에 달하는 마지막 퍼팅을 침착하게 성공하며 눈물을 흘렸다.
LPGA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윤이나. 윤이나는 넬리 코르다가 키운 LPGA 무대에서 과실을 거둘 한국 선수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LPGA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윤이나. 윤이나는 넬리 코르다가 키운 LPGA 무대에서 과실을 거둘 한국 선수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티띠꾼의 활약을 보면서, 동갑내기 골퍼 윤이나가 떠올랐다. 그녀는 넬리 코르다가 키운 무대에서 과실을 거둘 몇 안되는 우리 선수다. 윤이나가 성공한다면, 많은 한국 선수들이 세계 무대를 다시 두드릴 것이고, LPGA 대회의 리더보드 상단은 예전처럼 태극기로 수놓아질 것이다. 많은 것이 윤이나에게 달렸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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