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식 베트남대표팀 감독(가운데)이 5일 방콕에서 열린 태국과 2024 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대회 결승 2차전 원정경기를 마친 뒤 7년 만에 대회 정상에 오른 기쁨을 선수단과 나누고 있다. 사진출처|베트남축구협회 SNS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김상식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49)이 이를 실감하고 있다. K리그1 전북 현대를 이끌다 쫓겨나듯 지휘봉을 내려놓았던 그가 1년 반 만에 새로운 무대에서 영웅으로 등장했다.
김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5일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태국과 2024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 원정경기에서 3-2로 이겼다. 2일 홈 1차전에서 2-1 승리를 챙겼던 베트남은 2전승, 합계 스코어 5-3으로 최대 라이벌을 제압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베트남으로선 박항서 전 감독(66) 시절인 2018년 이후 7년 만의 정상 탈환이자, 사상 3번째 우승이다. 2년마다 개최되는 이 대회는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으로 불리며 현지에선 그 어떤 이벤트보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베트남에도, 김 감독에게도 매우 큰 성취다. 지난해 6월 베트남축구협회(VFF)와 계약했을 때만 해도 그에게는 ‘실패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2021년 전북 지휘봉을 잡고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데뷔 시즌 K리그1 우승에 이어 2022시즌 코리아컵(FA컵) 패권을 차지했다. ‘초보 감독’으로는 기대 이상의 성과였으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3년 5월 성적 부진으로 전북과 결별했다. 야인 생활이 불가피했다. 커리어 단절 위기였다.
절치부심하며 1년여를 보내는 동안 뜻밖의 기회가 왔다. 베트남의 러브콜이었다. 박 전 감독이 떠난 뒤 필립 트루시에 전 감독(프랑스) 체제에서 대표팀이 무너지자, VFF는 좋은 기억을 지닌 ‘한국인 지도자’를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곧장 ‘꽃길’이 펼쳐지진 않았다. 취임 초 기대 이하의 성적이 이어지면서 많은 비난이 뒤따랐다. 박 전 감독과 비교도 당연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 증명했다. 브라질에서 귀화한 공격수 응우옌 쑤언선을 중심으로 효율적 ‘선수비-후역습’ 전략을 구사해 이번 대회 정상에 우뚝 섰다.
2015년 상주 상무(현 김천)를 끝으로 야인으로 떠돌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17년 베트남에 부임해 엄청난 성공신화를 이룩한 박 전 감독처럼 김 감독도 놀라운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워 베트남 선수들과 융화됐다. 베트남어로 인사하고, 간단한 지시사항을 전하고, 국가까지 따라 부르는 김 감독에게 자존심 강한 베트남 선수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로열티(충성심)와 헌신, 존중이 좋은 팀을 만든다”는 원칙이다. 베테랑은 물론 세대교체 과정에서 합류한 영건들에게도 ‘원팀’ 정신을 주입했다.
흥겨운 우승 세리머니로 기쁨을 만끽한 김 감독은 “끝까지 싸워 이겨낸 선수들의 헌신에 감사하다”며 “큰 산을 넘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아시안컵 예선 통과에 연말 동남아시안게임(SEA게임) 금메달까지 도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