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대전구장에서 만난 ‘대한민국 4번타자’ 김태균(27·한화)은 질문하기 미안할 정도로 피곤한 낯빛이었다. 시차적응도 안 된 판에 쉴 새 없는 인터뷰와 행사참석이 이어졌고, 이 와중에 ‘설화(?)’도 겪었다. 드라마 ‘에덴의 동쪽’ 시청자여서 무심코 말했을 뿐인데 여자친구가 토라졌단다. 그래도 사람 좋은 김태균은 “관심 가져주셔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며 성실히 인터뷰에 응했다. 자리에 앉기 전, 막 개시된 시범경기 라인업에 자기 이름이 빠졌는지부터 확인하고서야 인터뷰는 시작됐다.》
○김태균이 회고하는 WBC 그때 그 순간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김태균이 보여준 ‘타격 베스트 3’는 ▲마쓰자카 상대 초대형 홈런(일본전 첫 경기) ▲이와쿠마 상대 결승 적시타(아시아라운드 순위결정전) 그리고 ▲메이저리거 올리버 페레스(멕시코전)와 호세 실바(베네수엘라전) 상대로 터뜨린 홈런을 꼽을 수 있다. 각 상황에 대한 김태균의 회고를 들어봤다.
“마쓰자카의 1-2구를 보고, ‘치기 괜찮구나’란 자신감이 생겼다. 볼 카운트가 0-3까지 가니까 스트라이크 잡으러 오겠구나 생각하고 직구를 노려서 제대로 돌렸는데 그대로 적중했다. 평가전부터 마쓰자카 피칭을 봤는데 ‘힘들겠다’란 생각이 안 들었다. 변화구 피처로 변해 있더라.”
“이와쿠마는 이제껏 쳐본 투수 중 제일 좋다고 할만한 상대였다. 코너워크 직구 변화구 뭐하나 빠지는 게 없더라. 당시 4회 1사에 주자를 1,2루에 두고 있었는데 이와쿠마가 병살타를 노리고 몸쪽 승부를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첫 번째 몸쪽 볼을 파울 유도했는데 또 다시 몸쪽 승부를 노렸고, 직구를 잘 받아쳤다. WBC에서 쳐낸 그 어떤 홈런보다도 개인적으로 최고 순간으로 꼽고 싶다. 결승타란 타이밍보다 완벽한 스윙 매커니즘이 이뤄졌다는 면에서 그렇다.”
“일본투수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오히려 쉬웠다. 그 의미는 공격적으로 던지니까 피하고 빼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어서였다. 솔직히 일본에서 미국 넘어오면서 컨디션도 떨어졌고, 상대팀의 견제도 엄청 심해졌다. 8강 라운드 멕시코-일본-일본전 3경기에서 직구는 딱 1개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4강에서 베네수엘라와 붙으니까 바로 승부를 걸어와 승부가 오히려 쉬웠다.”
○김태균은 ‘포스트 이승엽’이 아니다
WBC 회고담에서 간파되듯 김태균은 타격 마인드에 있어서 희귀한 4번타자 유형에 속한다. 흔히 ‘포스트 이승엽’이라 칭하지만 스타일 자체가 다르다.
이승엽이 사이클을 심하게 타다가, 결정적일 때 한 방을 터뜨리는 저력으로 각인된다면 김태균은 꾸준하게 출루하는 와중에 장타도 섞여 나온다. 굳이 김태균 타격의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선구안→저스트 미팅→파워 순서다. 김태균의 ‘고백’은 이를 뒷받침한다. “솔직히 선구안은 타고 난 것 같다. 70-80%는 선천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부터 볼에 방망이가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나를 야구의 길로 이끈 아버지도 그렇게 누누이 가르치셨다.”
김태균이 지향하는 타자는 ‘홈런도 많고 삼진도 많고 타율은 그저 그런’ 전형적 슬러거형이 아니라 타율도 안타도 볼넷도 많으면서 홈런은 옵션처럼 나오는 타자다. 실제 야구 기록면을 봐도 홈런기록보다 타율이나 OPS(출루율+장타율)를 먼저 챙겨본단다.
그래서 이번 WBC에서 사람들이 ‘김태균이 이승엽의 공백을 메우네 마네’라고 호들갑 떨 때 정작 그 자신은 덤덤했다. 원래 “되면 되고 안 되면 말고”의 낙천적 성격인데다가 머릿속으로 그린 최상의 이미지는 이승엽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WBC 최대 수확은 김태균이 ‘김태균의 타법’으로 대한민국 4번타자의 실력을 증명한 부분일 터다.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물론 부담도 되지만 나는 국제대회가 더 편하다. 상대에게 간파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자평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팀에서 뛴다
김태균은 WBC 참가 전, 일본진출 의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WBC를 치르고 나선 “미국도 될 것 같다”란 자신감을 얻었다. “WBC에서 수비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솔직히 운동장 덕이 컸다. 한국 야구장에선 그렇게 다이빙하다간 다칠 수 있기에 나도 모르게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또 “어디를 가도 리그 최고 투수는 치기 힘들다. 다 똑같은데 관건은 적응”이라고도 했다.
더구나 김태균은 올 시즌 후 FA(프리에이전트)가 된다. 그러나 그의 팀 선택 조건은 확고하다. “어려서부터 동경한 팀은 없다. 그런 팀이 있다고 해도 먼저 가고 싶다고는 말 안한다. 나를 인정해주고, 대우해주고, 필요로 하는 팀이 우선”이라고 했다. 당연히 한화 잔류 가능성도 담겨있는 발언이다.
무엇보다 김태균은 2009년은 한화선수란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WBC로 데미지가 있겠지만 팀에 집중하겠다. 우승한지도 오래됐고, 작년 홈런왕을 했으니 올해엔 타점왕과 타격왕을 노려보겠다.” 역시 마인드부터가 이질적인 4번타자다.
대전|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