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마스터’그렉매덕스를떠나보내며

입력 2009-01-02 14: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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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작년이 되어버린 2008년 12월 8일(현지시간) 메이저리그 팬들은 그들이 23년간 사랑과 존경을 아끼지 않았던 ‘영원한 마스터’ 그렉 매덕스를 떠나보냈다. 744경기 등판(740선발) 5008.1이닝 투구 355승 227패 평균 자책 3.16 3371삼진 999볼넷. 위의 기록은 현역 최고의 투수이자 1990년대를 대표했던 그가 지난 1986년부터 2008년까지 23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만들어낸 기록들이다. 1984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컵스의 2라운드 지명을 받은 매덕스는 스카우터들이 기피하는 ‘작은 체구를 가진 그저 그런 고졸 우완 투수’였다. 최고 구속이 95마일을 넘나들긴 했지만 메이저리그의 벽은 높기만 했고, 시즌 초 마이너리그를 평정했던 87시즌에도 빅 리그에서는 6승 14패와 5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을 뿐이었다. 빅 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던 매덕스에게 큰 변화를 준 것은 당시 시카고 컵스의 투수 코치로 재직하고 있던 딕 폴의 조언이었다. ‘빠른 직구를 버리고 정교한 컨트롤과 체인지업을 활용하라’는 폴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한 매덕스는 풀타임 선발 첫해인 1988시즌 전반기에만 15승 3패를 기록하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그 해 성적은 18승 8패 평균 자책 3.18) 88시즌의 성공을 발판삼아 빅 리그에서도 주목받는 선발 투수가 된 매덕스는 컵스에서의 마지막 해가 된 1992시즌 20승 11패 평균자책 2.18을 기록. 자신의 첫 번째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2.18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고도 11패를 당한 것은 11패를 당하는 동안 컵스의 득점 지원이 8점에 그친 탓이다.) FA 자격을 얻는 1992시즌에 사이영상을 수상한 매덕스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 당시 매덕스를 놓고 경쟁을 펼치던 뉴욕 양키스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중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한 구단은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뉴욕 양키스 였지만, 매덕스는 “우승권에 가까이 있는 팀에 가고 싶다” 라는 말과 함께 애틀란타의 돌도끼 유니폼을 입었다. 매덕스의 바람과는 달리 애틀란타는 매덕스가 뛰는 동안 단 한 번(1995년)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반면 양키스는 4번이나 타이틀을 가져 가는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매덕스가 애틀란타 유니폼을 입은 ‘92년 겨울의 선택’은 역대 최고의 FA 계약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 없이 매덕스는 애틀란타로 이적한 1993시즌부터 1995시즌까지 3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 최초의 ‘4년 연속 사이영상’의 대기록을 일궈냈다. 특히 그의 전성기로 기억되고 있는 1994-95시즌에는 선수 노조의 파업으로 94시즌에 두 달, 95시즌에 한 달을 손해 보면서도 각각 200이닝을 넘게 투구하며 1.56과 1.63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했다. 2년 연속 평균 자책 1.70 이하를 기록한 것은 월터 존슨 이후 처음. 전문가들은 선수 노조의 파업이 없었다면 ‘4년 연속 사이영상과 4년 연속 20승’ 이라는 대 기록의 수립도 가능했을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영원히 전성기를 유지할 것만 같았던 매덕스는 1998년 8월 18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통산 94번째 200승 투수가 된 바로 그 시점부터 서서히 내리막을 걷게 된다. 비록 19승을 기록했지만 익숙지 않던 3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1999시즌부터 3시즌 연속 3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매덕스는 2002시즌에는 2점대 평균 자책점에 복귀했지만 14년간 이어온 연속 200이닝 투구의 기록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3시즌이 끝난 후 친정팀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매덕스는 여전히 예전의 투구를 되찾지 못했지만 2004년 8월 자신에게 200승을 안겨줬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꿈에도 그리던 300승 투수가 됐다. 그 시절의 매덕스는 비록 승보다 패가 많은, 이닝 수보다 피안타가 많은 전성기를 한참 지난 노장 투수였지만 매덕스가 쌓아가는 이닝, 승, 삼진 등은 팬들에겐 큰 즐거움이었고 메이저리그에게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가는 멋진 순간순간 이었다. 2008시즌 ‘일생의 라이벌’ 로저 클레멘스가 약물 복용 혐의로 인해 팬들에게 질타를 받고 선수로서의 생명도 잃어버린 사이 매덕스는 클레멘스가 기록하고 있던 현역 최다승(354)을 뛰어넘어 355승을 마크했다. 그를 아끼는 팬들은 2~3년 정도 선수 생활을 영위하면서 워렌 스판이 갖고 있는 20세기 이후 출생한 선수 중 최다승(363승)과 메이저리그 초창기에 활약하던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와 크리스티 매튜슨이 갖고 있던 역대 다승 3위의 기록(373승)을 경신해주길 바랬지만 매덕스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라는 말을 남긴 채 우리의 곁을 떠나버렸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완벽하게 해냄’으로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들이 있는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최고의 투수가 된 그렉 매덕스 이제 매덕스가 선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명예의 전당 득표율’ 단 한 가지가 남았다. 2007년 초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칼 립켄 주니어가 역대 최고 득표율(톰 시버 98.84%)을 경신하지 못한 현재 전문가들은 “그 기록을 깰 수 있는 선수는 매덕스 뿐” 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투수에게는 빠른 직구와 낙차 큰 변화구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느리지만 정교한 제구력이 가미된 현란한 무브먼트를 자랑하는 직구와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렉 매덕스. 그가 이처럼 빅 리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어린 투수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코치들도 공의 속도에 집착하지 않고, 제구력과 무브먼트를 강조하고 있다. 100여 년간 내려져온 투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꾼 그렉 매덕스. 그의 은퇴는 한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야구팬들의 진한 아쉬움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조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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