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 전문기자의 2019~2020시즌 V리그 프리뷰⑧ IBK기업은행

입력 2019-10-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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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감독 체제로 변신하며 제2의 창단을 선언한 여자배구 IBK기업은행은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강조한다. 탄탄한 수비와 포지션 변화로 또 한 번의 도약을 노리고 있는 IBK기업은행 선수단이 시즌 개막에 앞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배구단

여자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은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정철 창단감독을 고문으로 후퇴시켰다.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서였다. 팀의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이 6시즌에서 멈춘 뒤였다. 전격적이었다. 구단은 과거와의 단절과 제2의 창단을 선언했다. 물론 창단하자마자 수원에서 선수단의 숙소용 아파트를 임대하고 수일여중 체육관을 빌리러 다니는 일부터 시작했던 창단감독의 영향력과 흔적은 여전히 여기저기에 남았다. 창단 2시즌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선물로 탄생한 기흥의 전용훈련장과 숙소에도 전 감독의 손때는 묻어 있다. 새로운 시대를 상징할 제2대 김우재 감독은 시즌 내내 과거와 많은 비교가 될 것이다.

그가 IBK기업은행의 감독이 되자 많은 배구인들은 김우재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배구의 중심부에서 오래 떨어져 있었다. 자신도 “프로팀 감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라고 했다. “한 때는 꿈도 꿨지만 어느 순간 내 밑에서 감독이 되는 것을 보고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낙향하는 심정으로 강릉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새 감독자리를 놓고 많은 소문이 나돌았다. 20명의 후보가 이력서를 냈다거나 현장의 결정이 2번 퇴짜 맞았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러다 부랴부랴 이름도 잘 모르는 여고팀 감독이 프로팀 사령탑으로 결정됐다.

“이력서도 내지 않았다. 대회에 출전하려는데 IBK기업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형식상의 후보 가운데 한 명일 것이라고 생각해 의례적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찾아오겠다고 했다. 진정성이 보였다. 내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안 했기에 편하게 얘기했다. 외부에서 본 팀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말했는데 며칠 뒤 연락이 왔다. 그 다음에 이력서를 냈다”고 선임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IBK기업은행 김우재 감독.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배구단


● 이례적이었던 감독선임과 새 감독 체제에서 달라진 것들

사실 새 감독선임은 이례적이었다. 선수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선수들이 먼저 원했기에 좋은 점도 있지만 걱정스러운 점도 있다. 좋았던 관계도 상황에 따라 나빠지고 나중에는 원수가 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 승패가 중요한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더 그렇다. 감독과 선수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동반자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생긴다. 이럴 때 균형이 무너져 일방적인 관계가 되면 팀은 가라앉는다. 감독이 선수에게 휘둘려도 문제고 선수들이 따르지 않는데 감독이 억지로 쥐어짜도 문제다.

김우재 감독 체제에서 가장 달라진 것은 감독실의 풍경이다. 선수들이 자주 찾아온다. 외출을 갔다온 선수들은 가끔 먹을 것을 드시라면서 놓고 간다. 감독은 선수들을 편하게 대해주려고 했다. 어떤 요구건 잘 들어줬다. 비시즌 훈련 때 매 주말마다 쉬게 해줬다. 훈련 이후의 생활은 관심도 두지 않았다. 알아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코트에서의 훈련만큼은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IBK기업은행 어나이.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배구단


● 자유는 주지만 훈련장에서의 행동은 책임져라

기자가 감독이 바뀐 것을 실감한 것은 외국인선수 어나이의 늦은 귀국이었다. 재계약이 결정된 그는 미국에서 비치발리볼을 하고 난 뒤 하와이의 집에 들렀다 오겠다고 했다. 이미 다른 팀의 외국인선수들은 입국해 훈련이 한창이었다. 어나이는 열흘 늦게 팀에 합류했다. 예전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8월 1일에 입국시켰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 시즌보다 체중이 불어서 온 그를 보는 감독의 시선에는 걱정이 담겨져 있다.

감독은 구단에도 “선수들에게 궁금하거나 할 얘기가 있으면 나를 통하거나 알리지도 말고 직접 만나라”고 했다. 감독의 눈치를 보지 말고 선수를 접촉하라는 얘기에 구단의 표정은 밝아졌다. 이 과정이 잘못되면 큰 탈이 난다. 선수들이 뒤에서 감독을 험담하거나 구단이 선수단의 일에 꼬치꼬치 관여하기 시작하면 배는 산으로 간다. 그래도 김우재 감독은 대담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프로감독이 됐다. 큰 욕심도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성적이 나쁘면 언제든지 나가야 한다. 오래할 생각도 없다. 다만 내가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고 내 행동과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비운 사람이 무섭다. 언젠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감독시절 그는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 때를 기억하는 선수들은 지금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감독을 더 두려워한다.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어른이 된 선수들은 훈련장에서 감독의 눈매를 먼저 살핀다. 감독은 여름에 홍천으로 함께 워크숍을 떠나 서로를 익히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지금 IBK기업은행의 키워드는 스킨십과 진정한 소통이다. 물론 쉽지 않은 화두다.

IBK기업은행 백목화-표승주-김희진(왼쪽부터).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배구단


● 탄탄한 수비와 김희진의 선택

비시즌 동안 4명이나 국가대표에 차출되면서 베스트멤버로 함께 호흡을 맞춰볼 시간이 부족했다. 이 기간 동안 남은 선수들은 알차게 훈련했다. 기자가 처음 IBK기업은행의 연습경기를 보고 눈에 띈 것은 수비조직력이었다. 감독은 “내 배구는 수비다. 수비가 탄탄해서 경기가 된다”고 했다.

팀 구성에 많은 변화도 줬다. 베테랑 백목화는 이번 시즌부터 리베로로 변신한다. 남지연이 물러난 이후 팀의 고질병이었던 리시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베테랑의 배구센스를 선택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팀에 합류한 한지현은 디그 담당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든든한 팀의 기초가 되어줄지 궁금하다. KOVO컵과 연습경기에서는 아직 미흡해 보였다.

전임 감독이 성사시킨 FA영입선수 표승주는 팀의 공격옵션을 강화해줄 카드다. 대표팀 차출이 길어 동료들과 맞춰볼 시간은 부족했다. 순천 KOVO컵에서도 문제점이 보였다. 시간과 땀이 해결할 문제다. 고예림의 FA이적으로 현대건설에서 받아온 김주향과 프로 2년차 문지윤의 성장은 반갑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김희진의 역할이다. IBK기업은행의 상징인 김희진은 그동안 OPP 역할을 원했다. 하지만 팀의 형편상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MB와 겸용이 반복됐다.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체제에서 김희진은 OPP로 고정됐다. 이제는 대표팀의 든든한 공격옵션이다. 아쉽게도 팀에서는 MB로 뛰어줘야 더욱 시너지 효과가 난다. 김수지를 빼면 MB 한 자리가 빈다. 김희진이 그 자리에 서면 표승주가 OPP로 결정력을 높일 수 있다. 김주향과 어나이가 WS로 들어갈 때 공수의 균형이 가장 맞는다고 감독은 판단한다.

하지만 김희진이 OPP를 원하면 다른 구성을 해야 한다. 그래서 김우재 감독은 김희진이 대표팀에서 복귀한 뒤 면담을 통해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 이런 과정 또한 과거와는 달라진 IBK기업은행을 상징한다.

기흥|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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