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현 기자의 WBC 에세이] 이승엽-김태균의 ‘허허실실’ 대주자 작전

입력 2013-0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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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김태균. 스포츠동아DB

이승엽-김태균. 스포츠동아DB

“대주자로 나가서 허를 찌르는 도루를 하는 거죠.” “어? 그건 내가 할 일인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날쌘돌이’ 이용규(KIA), 정근우(SK)의 대화가 아닙니다. 이름만으로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이승엽(삼성)과 김태균(한화)의 대화입니다. 국가대표 간판타자들이 ‘결정적 순간 한 방을 때리겠다’가 아니라 ‘대주자로 나가 찬스를 살리겠다’는 얘기로 옥신각신하고 있습니다. 이번 WBC 대표팀에는 이대호(오릭스), 김태균, 이승엽이 모두 이름을 올렸습니다. 덕분에 타선은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지만, 포지션이 모두 1루수라 세 선수가 한 경기에 선발 출장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지션 중복문제에 대해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한 명은 1루, 한 명은 지명타자, 한 명은 대타로 기용하겠다”는 복안을 밝혔습니다. 즉, 어느 누가 어떤 포지션을 맡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최고의 타자들이지만 서로 “내가 대타”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승엽은 “후배들이 주전이고, 난 중요한 순간 대타로 나가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김태균은 한술 더 떠 “내 자리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더니, 대타도 아닌 ‘대주자 작전’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도루를 할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대주자로 나가서 투수가 방심했을 때 2루를 훔쳐서 상대편 흔들어놓고, 2루에 가면 진짜 대주자를 내서 득점을 올리는 거지. 완전 허를 찌르는 작전! 어때요?” 김태균의 너스레에 이승엽도 지지 않습니다. “어! 안 되는데….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인데….” ‘국민타자’의 한마디에 다시 폭소가 터집니다. 물론 이들은 1·2회 WBC에서 그랬듯 대표팀의 해결사로서 중심을 지켜줄 겁니다. 그저 ‘어떤 보직이든, 그게 혹 대주자가 될지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유쾌한 농담 속에 풀어놓을 뿐입니다.

도류(대만) |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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