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기자의 남아공 리포트] 악몽의 4골…허둥축구 이유있었네

입력 2010-01-11 14: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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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허감독이 본 대패 3대 요인
9일 오후(현지시간) 잠비아와의 평가전을 본 축구팬들은 상당히 답답했을 듯싶다. 막말로 “저걸 축구라고 해”라는 불만도 드러냈을 법하다.

지인 중 한명은 국제전화를 걸어와 “도대체 몸의 중심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대표선수가 어디 있느냐”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충분히 불만을 살만한 경기였다. 잠비아 선수들의 몸놀림 한 번에 휘청거리면서 나가 떨어졌고, 볼 앞에서 허둥대기 일쑤였으며, 볼 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새로운 공인구와 1750m의 고지대라는 변수가 있긴 했어도, 해도 너무했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를 두고 허정무 감독은 “빙판에서 경기를 하는 것처럼 허덕였다. 오늘 같은 경우는 전술과 전략이 무의미하다”며 허탈해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토록 대표선수들을 망가뜨렸을까.

다음날 오후 루스텐버그의 숙소 헌터스레스트 호텔에서 가진 미디어데이에서 허 감독을 만나 궁금했던 것부터 물었다. 왜 그토록 허둥댄 것이냐고. 전날의 악몽을 잊으려 오전에 테니스를 쳤다는 허 감독은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경기”라고 전제하면서도 집요한 질문에 몇 가지 원인을 들려줬다. 우선 체력적인 부분이다. 시즌이 끝나고 푹 쉰 뒤에 4일 출국해 4일 정도 훈련을 하고 실전 경기를 치른 것을 한 가지 원인으로 꼽았다. 대부분이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의미다. 지난 달 중순까지 실전을 치른 올림픽대표선수들과 포항 선수들이 그나마 정상 플레이를 한 것과 같은 이유다.

지난해 1월 제주도 훈련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는데,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대표선수들이 광운대에 패하면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체력적인 상황은 그 때와 흡사하다. 그라운드가 젖은 데다 잔디가 떠 있어 축구화의 스터드가 바닥에 붙지 않은 것도 중심을 못 잡은 이유라고 했다. 피지컬 트레이너 베르하이옌의 체력훈련을 받고 근육통을 호소한 선수가 있었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볼이 빠르고 몸이 아직 경기와 강한 훈련에 적응이 안 된 상태이다 보니 심리적으로 위축됐고, 이는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다고도 덧붙였다.

물론 새로운 공인구 자블라니가 젖은 잔디에서 생각보다 빨리 움직여 속수무책이었고, 고지대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어느 것 하나 유리한 것이 없다보니 4골이라는 대량실점을 하게 됐다고 한다.

허 감독은 선수들에게 “빨리 잊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수들 또한 대패의 악몽을 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일반적으로 대패한 뒤에 나타나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자신감 상실이거나 좋은 자극제가 되어 경기력이 향상된다. 월드컵을 향해 뛰는 태극전사들이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루스텐버그(남아공)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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