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에 분노… 구단주 상대 ‘안티 운동’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재정 악화로 위기를 맞았다.
성지인 올드 트래포드 스타디움을 비롯해 캐링턴 연습구장, 웨인 루니까지 파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미국인 구단주 글레이저 가문에 대한 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팬들은 대규모 집회를 가지는 등 ‘안티 글레이저 가문’운동을 펼치고 있다.
●투명성 잃은 글레이저 가문
2005년 빚을 내서 맨유를 7억5000만 파운드에 인수한 글레이저 가문의 부채는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더욱 늘어나게 됐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에 의하면 이 부채 중에는 금리가 14%를 넘는 것도 있다.
글레이저 가문은 최근 부채 해결을 위해 5억 파운드(1조원)의 채권을 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스타디움 확장 공사로 티켓판매 수입은 늘었고, 스폰서들로부터의 지원금, 스카이스포츠의 막대한 중계비 등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을 맞았다는 사실은 구단주의 경영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의 시몬 스톤 기자는 “글레이저 가문이 맨유의 관리자금에서 2290만 파운드를 빼내 개인적인 부채를 갚는데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맨유의 팬 그룹 MUST(Manchester United Supporters Trust)의 회장 던칸 드라스도는 “(부채 발행이) 클럽을 위한 일은 아니다.
헤지펀드 투자를 위한 것이다. 글레이저 가문을 위한 일이다. 이대로 두고 보다가는 앞으로 12개월 안에 맨유의 재정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수많은 팬들이 티켓을 위해 지불한 돈이 글레이저 가문을 위해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팬들은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의 이적으로 생긴 막대한 자금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퍼거슨 감독은 “글레이저 가문이 그동안 맨유에 대대적인 지원을 해왔다. 호나우두의 이적으로 생긴 자금은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았고 잘 보관되고 있다. 단지 호나우두를 대체할 가치 있는 선수를 찾지 못한 것 뿐”이라며 두둔했지만 팬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몇년 전 올드 트래포드의 이전이 추진 됐을 때 엄청난 반대 여론이 들끓었을 만큼 팬들에게 올드 트래포드는 성지와도 같다. 그런 경기장을 팔지도 모른다는 글레이저 가문의 행보에 팬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분노한 팬들, 집단행동 개시
지난 16일 번리전을 앞두고 MUST를 비롯한 단체들은 올드 트래포드 주변에서 긴급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호나우두와 카를로스 테베스를 보낸 뒤 딱히 그들을 대체할 선수를 데려오지도 못한 상황에서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폴 스콜스, 반데사르 등의 은퇴까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면서 “조치가 필요하다”고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들은 이 회의에서 “매주 경기장을 찾는 7만 명 이상의 서포터들의 돈을 오로지 개인적인 이익과 빚만 갚는데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퍼거슨의 사퇴 요구와 맨유상품 불매운동에 합의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번리와의 경기 도중 후반 중반부 쯤 ‘Love United, Hate Glazer’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전광판 위에 내걸기도 했다.
현재 MUST는 서포터스를 도와줄 투자자들을 찾고 있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안티 글레이저 운동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모양이다. 이들은 안티 운동에만 그치지 않고 여러 전문가들, 은행과도 접촉하며 직접 맨유의 상황을 바꿀 묘안을 스스로 찾고 있다.
맨유의 오랜 팬이자 지역 의원인 토니 로이드는 이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를 국회에 상정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글레이저 가문은 전 스포츠장관 리차드 카본의 신뢰를 받고 있어 로이드 의원의 국회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 예상된다. MUST회장 던칸은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모든 사람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보고 있다. 글레이저 가문이 맨유에 있을수록 피해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들이 있는 한 맨유의 미래는 어둡다. 변명의 여지도 정당성도 없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고 했다.
“결국 그들은 맨유를 팔 것이다. 우리는 구단주를 바꾸기 위한 여러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빅4에서 밀려나게 된다면 소득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맨유는 추락할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위험한 상황이다”며 그는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맨유 팬들이 모여드는 인터넷 블로그도 글레이저 가문에 대한 분노로 가득하다. 그들은 글레이저 가문을 욕하면서 “그들이 맨유로부터 바라는 건 오로지 자신을 위한 이익 뿐, 클럽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맨유가 하루 빨리 이 양키들로부터 벗어났으면”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글레이저 가문의 대변인은 “(팬들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명문구단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은 팬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다. 클럽에 충성을 다하는 팬들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과연 맨유를 살릴 수 있을까 궁금하다.
맨체스터 | 전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