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월드컵 ⑦월드컵과 골키퍼] 이운재, 야신 무실점 기록 넘을까

입력 2010-05-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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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대회마다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월드컵 공인구는 진화를 거듭하지만 골키퍼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잘해야 본전치기에 그치는 고독한 포지션 골키퍼. 아무리 논란이 일고 있어도 허정무호의 기둥은 이운재다. 왼쪽 작은 사진은 세계 평정을 노리는 스페인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와 이탈리아의 백전노장 골키퍼 부폰. 스포츠동아DB

매 대회마다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월드컵 공인구는 진화를 거듭하지만 골키퍼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잘해야 본전치기에 그치는 고독한 포지션 골키퍼. 아무리 논란이 일고 있어도 허정무호의 기둥은 이운재다. 왼쪽 작은 사진은 세계 평정을 노리는 스페인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와 이탈리아의 백전노장 골키퍼 부폰. 스포츠동아DB

3경기 무실점…1경기 추가땐 세계 타이
B조 GK 나홀로 30代…관록 싸움 빛날까
카시야스-부폰, 남아공 야신상 강력후보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4년의 준비를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고독한 포지션. 축구에서 골키퍼의 비중은 크다. 최소한 패배는 막아줄 수 있는 게 바로 수문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외롭지는 않다. 월드컵에서도 최고 활약을 펼친 골키퍼에게 별도로 상을 줄 만큼 위상은 확실히 보장받고 있다. 세계 축구에서 가장 위대한 골키퍼로 칭송받는 인물은 구 소련(러시아)의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 54년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돼 58년, 62년, 66년, 70년 4차례 월드컵에 참가해 본선 13경기 중 4경기를 무실점으로 끝냈다. 골키퍼로는 유일하게 유럽축구연맹(UEFA)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뽑혔고, 현역 동안 막아낸 페널티킥은 무려 150개나 된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그의 업적을 기려 94미국월드컵부터 ‘야신 상’을 주고 있다.


○4번째 월드컵 출전하는 이운재
유럽 축구에 야신이 있다면 한국에도 훌륭한 골키퍼가 있다. 바로 허정무호의 골문을 책임질 이운재(수원)다. 37세 나이가 다소 부담스럽고, 최근 둔해진 몸 상태와 경기력은 아쉽지만 여전히 월드컵 참가 4회에 빛나는 기록을 지닌 자타공인 최고 수문장이다.

94미국월드컵 조별예선 독일과 최종전에서 경희대 재학생 이운재는 처음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뒤 2002한일월드컵과 2006독일월드컵까지 한국의 골문을 지켰다. 실점 없이 끝낸 월드컵 경기도 3차례(2002년·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다. 만약 남아공 무대에서 한 차례만 더 무실점 경기를 펼치면 적어도 월드컵 출전 기록만으로는 야신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승부차기 승률도 거의 100%에 달한다. 한때 위기론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말보다는 그라운드에서 보여 주겠다”는 한마디에선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이 될지 모를 남아공 무대에 대한 강한 애착과 각오가 묻어난다.

한국 축구는 좋은 골키퍼를 많이 배출해왔다.

이운재에게 사실상 대표팀 NO.1 자리를 물려준 이는 최인영(전북 GK코치). 그는 94년 대회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범해 이운재에게 장갑을 내주긴 했지만 90이탈리아월드컵부터 주전 골키퍼로 자리매김했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김병지(경남 플레잉코치)가 주전으로 뛰었지만 2002년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후보로 밀려났다. 86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오연교가 활약했고, 54년 스위스 대회에서는 “정신없이 볼을 막다보니 온 몸에 멍이 들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홍덕영 옹이었다. 지금은 비록 이운재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K리그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김영광(울산)과 정성룡(성남) 등이 출전을 기다리고 있다.


○남아공을 빛낼 주인공은?
이운재와 진검 승부를 펼칠 B조 상대국의 골키퍼들은 전부 20대로 구성돼 있다. 아르헨티나는 23세 세르히오 로메로(알크마르)다. 2007년 20세 이하 청소년대회와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의 주역이었던 로메로는 마리아노 안두하르(카타니아), 디에고 포소(콜론)를 제치고 당당히 주전 장갑을 꼈다.

나이지리아는 이스라엘 무대에서 뛰는 28세 빈센트 엔예아마(하포엘 텔아비브)다. 2002년 월드컵에서 뛴 경험이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아프리카네이션스컵은 2004년 이후 올해까지 무려 4차례나 밟았다.

그리스는 자국 최고의 클럽 파나시나이코스에서 뛰는 알렉산드로스 초르바스(28)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월드컵 예선 초반에는 콘스탄티노스 할키아스가 주전이었지만 갑작스런 발목 부상으로 초르바스에 주전을 내줬다.

하지만 상당수 국가들은 골키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내로라하는 골리들이 버티던 곳은 더욱 그렇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칭송받던 올리버 칸을 배출한 독일이지만 작년 엔케가 사망한 뒤 명성을 이을만한 인물이 없어 고민이다. 레네 아들러(레버쿠젠)와 팀 비제(베르더브레멘)가 엎치락뒤치락 주전을 놓고 경쟁을 벌이나 요아힘 뢰브 감독은 만족할 수 없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도 마찬가지. 대표팀에서 은퇴한 에드윈 판 더 사르의 공백을 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아약스)가 메우고 있는 ‘오렌지 군단’은 유럽 예선 최소 실점(2실점)으로 그럭저럭 명성을 이어가지만 수비 컨트롤 능력과 안정감은 부족하다는 평가. 로버트 그린(웨스트햄)과 데이빗 제임스(포츠머스)가 경쟁 구도를 그리는 잉글랜드 골문도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반면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유벤투스)과 스페인의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는 역대 대회에 비해 다소 빈약해 보이는 이번 월드컵을 빛낼만한 인물로 꼽힌다.


○월드컵 최고의 수문장은?

야신 외에도 톱클래스 골키퍼들은 꾸준히 존재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파비앙 바르테즈와 잉글랜드의 데이빗 시먼은 지금도 수많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영웅들. 하지만 30대 중후반까지 대표팀 주전으로 뛰는 바람에 세대교체가 뒤처지게 한 주역으로도 손꼽힌다.

탁월한 프리킥 능력으로 ‘골 넣는 골키퍼’로 명성을 떨친 파라과이의 칠레베르트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고, 올리버 칸은 냉철한 판단력과 감각적인 운동신경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독일의 골문을 지켜냈다.

덴마크의 피터 슈마이켈과 멕시코의 호르헤 캄포스도 발군의 기량을 인정받았고, 이탈리아 대표팀 사령탑까지 맡았던 디노 조프도 위대한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득점을 늘려 흥미를 더하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의도 탓일까. 매 대회 때마다 첨단 과학의 집결체인 월드컵 공인구는 한결 가벼워지고, 탄성을 더하며 골키퍼들을 괴롭힌다. 반면 반사 신경을 높이도록 한 장갑이 발명됐다는 얘기는 전혀 없다. 과학과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대결. 월드컵을 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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