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경기장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왜 안 내려오니?”
당초 대표팀의 훈련은 오후 4시30분으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훈련이 30분 앞당겨 지면서 예정보다 취재진의 출발시간도 앞당겨졌다. 갑작스레 공지된 터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숙소에는 “1분만 기다려주세요”를 외치던 기자들이 4명 있었다. 허겁지겁 취재장비를 챙기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그러나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지각생들을 기다렸다가는 다수의 취재진도 늦을 수 있었기 때문에 1분만 기다리고 곧장 경기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허탈감에 주위를 둘러보니 남은 기자는 총 세 명. 한 기자는 간신히 버스를 잡아탔는데 3명은 이미 떠난 버스의 빈자리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가이드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다. 먼저 출발한 취재진을 내려주고 버스를 다시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겠다’라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숙소와 경기장까지 20분 정도 소요되는 것을 감안했을 때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도착할 경우 인터뷰는 물론 훈련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호텔 안내원을 통해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꺼림칙했다. “남아공에서 택시는 흑인들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외국인이 택시를 함부로 타면 안 된다.”라는 등의 말을 들은 터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장한 세 명의 대한민국 기자들은 도전정신을 발휘해 과감하게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이날 오전 휴대폰에 ‘불요불급한 외출, 개인행동, 대중교통 이용 등 자제 요망’이라는 외교부-월드컵 안전여행 공지 문자가 날아왔음에도 말이다.
택시를 부른 지 10분 쯤 지나자 허름한 승용차 한 대가 호텔 정문 앞에 섰다. 차종은 1980년대 한국 자동차의 혁명을 주도했던 ‘포니’ 최초 모델과 비슷했다. 예상대로 아프리카에서 운행하는 택시답게 전혀 세차가 되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차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백인 택시기사는 ‘WD'(내손이 윤활유)라고 말하며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차 내부에는 길안내 장치 및 오디오가 설치되어 있었다. 에어컨도 있었지만 자연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비용은 알려진 것보다 비싸지 않았다. 15분 거리인 호텔에서 경기장까지 3인에 80란드(약 1만5천원). 이곳은 미리 택시기사와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외국인들은 바가지요금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알려져 있던 터라 경기장까지 가면서 계속해서 요금을 되물었다.
남아공에도 속도측정기가 있다고 한다. 한국 취재단을 담당하는 가이드에 따르면, 속도측정기를 남아공에 들여온 것은 한국인이라고 한다. 국가사업을 맡은 덕에 큰 부를 누렸다고. 이후 다른 한국인이 더 낮은 가격에 사업권을 따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국가의 택시기사든 어느 곳에 속도측정기가 있는지 꿰뚫고 있는 모양이다. 이날 택시기사는 최고 140km까지 밟았다.
아무런 사고 없이 경기장에 도착해 취재를 끝낸 뒤 숙소로 돌아왔다. 이후 가이드에게 “현지 택시를 탔는데 위험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가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이드는 “기자님들이 타신 차도 ‘택시’라고 불리는데 이곳의 택시는 승합차를 모는 흑인 운전사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남아공에서 통용되는 흑인 택시를 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살아서 내리기 힘들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고 조언했다.
가이드의 말을 듣고 같이 탔던 동료 기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모두 절대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로 다짐했다.
러스텐버그(남아공)=김진회 동아닷컴 기자 manu3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