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성-메시. [사진=(주)코리아이엠지 홈페이지]
동쪽에서 떠오른 카탈루냐의 별
정인성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02년 아버지의 권유로 스페인 축구유학에 올랐다. 카탈루냐 유소년팀에 합류한 첫 해인 2002~2003 시즌에 30경기에 출전해 25골을 넣으며 주목받았다. 정 씨는 “못 넣으면 안될 정도로 동료들이 어시스트를 잘해줬다” 고 겸손해 했지만, 당시 정 씨는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주 유소년 최우수선수에 뽑힐 정도로 기량이 출중했다. 그의 활약을 지켜본 FC바르셀로나에서 먼저 입단 테스트 제의를 해왔고 정 씨는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테스트에 합격하게 된다. 정 씨는 “당시 세계 각지에서 유망주 6만여 명이 유스팀 입단테스트에 참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면서 “운이 좋았다” 고 말했다.
팀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메시
“지금 보시는 메시가 그 때의 메시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인성이 메시를 처음 본 것은 2004년 FC바르셀로나의 16, 17세 유소년팀에서였다. 정 씨가 회상하는 메시는 그 당시에도 화려한 개인기로 경기장을 휩쓸고 다녔다. 유럽에 흔하지 않은 왼발잡이, 작은 체구, 뛰어난 기량, 적은 말수. 유독 눈에 띄는 선수였기에 동료 선수들에게 그의 이름을 묻기도 했다.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사이였기에 메시와 친하지는 않았다. 정씨는 “지나가며 인사정도 하는 사이” 라고 말했다. 주전 경쟁에서 밀린 정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벤치에서 메시의 활약을 지켜봐야했다. 결국 정씨는 감독의 권유로 6개월 만에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을 떠났다.
부상 그리고 새로운 축구인생
FC 바르셀로나에서 2부리그 팀 산 안드레우으로 둥지를 옮긴 정씨는 줄곧 주전으로 기용됐다. 그러나 경기에 계속 출전 할 수 있다는 즐거움보다는 축적되는 피로에서 오는 고통이 더 컸다. 정씨는 “홀로 남겨진 스페인에서는 고통을 호소할 데가 없었다” 고 회상했다.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전을 강행해야 했고 시합 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나서야 출전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쉽게 나을 것 같았던 왼쪽 무릎의 회복이 더뎠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졌고 체중은 계속해서 불어났다. 러브콜을 보내던 명문 구단들도 뒤돌아섰다. 부상을 회복한 뒤에는 옛 기량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100미터를 11초대 초반에 주파했던 폭발적인 스피드도 사라져버렸다. 결국 그는 3부리그 팀을 전전하다 2008~2009 시즌을 끝으로 선수 인생을 마감한다.
그는 현재 코리아EMG의 해외사업팀장을 맡아 한국과 스페인을 오가며 축구 꿈나무들의 스페인 유학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FC바르셀로나와 제휴를 맺어 한국에 ‘FC바르셀로나 축구학교’ 를 건립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FC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유로매니지먼트그룹(EMG)의 마누엘 꼴메네로 회장이 직접 이 일을 제의해왔다. 정 씨는 “한국 선수가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에서 주전으로 뛰는 것을 보는 것이 꿈”이라며 “내가 저질렀던 실수를 축구 꿈나무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잘 지도하고 싶다” 고 포부를 전했다.
백완종 동아닷컴기자 100p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주)코리아이엠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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