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진짜 ‘공주의 남자’는 정종 이민우?…‘경종’라인이 흥하는 이유

입력 2011-08-11 16: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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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과 경혜공주가 행복해진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스포츠동아DB

'찌질한 부마' 이민우(35)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조선 초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 KBS '공주의 남자(이하 공남)'에서 문종의 딸 경혜 공주(홍수현)의 남편 정종 역할로 안방 여심을 흔들고 있다.

시청자들은 회당 5분 남짓한 정종의 등장 신을 플래시로 만들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거나, '사극 갑(甲)'이라며 추켜세운다. 이 참에 아예 주인공을 정종-경혜 공주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종 이민우의 인기 비결은 뭘까.


▶'완벽남', '나쁜 남자' 사이에서 지분을 확보한 '허당' 정종

'공남'은 야사(野史)에 나온 수양대군의 딸과 우의정 김종서 손자의 사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른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셈. 실제로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난 당시 김종서 집안이 수양의 손에 도륙됐으니, 두 사람의 사랑은 잘만 그린다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러브스토리가 될 터.

제작진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캐릭터에도 공을 들였다. 이른바 여심 잡는 '훈남 3종 세트'다.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박시후)는 완벽남으로 설정됐다. 여기에 나쁜 남자 신면(송종호)과 허당 정종(이민우)이 더해졌다.

처음 주목받은 인물은 단연 한류스타 박시후가 연기한 김승유였다. 수양대군의 딸 세령(문채원)과 사랑에 빠질뿐더러 경혜 공주의 남편감으로 먼저 내정된 것도 그였다. 세령 때문에 김승유와 삼각관계로 엮이는 신숙주의 아들 신면도 만만치 않은 '기럭지' 미남이다.

이에 비해 몰락한 양반집 자제로 친구들에게 '빈대' 붙어 기생집을 드나드는 드라마 초반 정종의 입지는 안쓰러울 정도다. 경혜 공주에게 뺨을 맞고 첫눈에 반할 뿐만 아니라, 폭력배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추한 모습도 들킨다. 당초 부마로 내정된 김승유와는 소위 '급'이 다른 셈.

머리로는 완벽남을 꿈꾸지만, 가슴으론 모성본능 자극남에 끌리는 변덕스러운 여심 탓일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종-경혜 공주 커플에 대한 팬들의 지지도가 상당하다.

'공남' 조정주, 김욱 작가는 "정종은 연기 내공 없이는 소화하기 힘든 인물"이라며 "극 초반부터 후반까지 엄청난 굴곡을 겪는 인물로 다양한 색깔의 연기가 동원돼야 하기에 다수의 사극에서 내공을 키운 이민우 씨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정종과 경혜공주는 비록 혼인했지만,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사진출처='공주의남자' 방송 캡쳐.




▶사극의 남자, 바로 이민우!

2006년 제대 후 '열아홉 순정' 등 현대극에 출연한 이민우는 사실은 그 전까지만 해도 최수종, 정태우 등과 함께 '사극에 가장 어울리는 남자배우'로 꼽혀왔다.

1981년 MBC 정통사극 '조선왕조 오백년'으로 데뷔한 이민우는 춘향전, 한명회(이상 1994), 용의 눈물(1996), 여인천하(2001), 무인시대(2003) 등에 출연했다. '용의 눈물'에서 그가 연기한 광기에 젖은 양녕대군은 "어떤 배우를 데려와도 더 잘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호연이었다.

사극에 있어선 이민우에게는 '안정감'이 있다. 오랜 연기 경력, 배우 자신이 가진 사극의 노하우, 사극 배경에서의 시각적인 익숙함 등에서 박시후와 송종호를 압도한다.

단순히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에 들러리로 서기엔 이민우가 풍기는 존재감이 크다. 정종이 다른 두 친구와 급이 다른 만큼, 이민우도 다른 두 배우와 급이 다른 셈.

게다가 정종이라는 인물은 그가 사극에서 해왔던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과는 다르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현재까지 드러난 정종은 어찌 보면 '찌질'하기까지 하다. 이를 통해 이민우가 '익숙함 속의 신선함'으로 다가왔다"며 "향후 진행에 따라 정종이 점차 진지한 캐릭터로 바뀌어간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일탈'하는 캐릭터가 매력적

정종처럼 정형적이지 않은 드라마 캐릭터가 인기를 끈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바람둥이 구용하와 반항아 문재신이 이슈의 중심에 섰고, '선덕여왕'에선 명장 김유신보다 악역 비담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갔다. '사극의 제왕' 최수종이 연기한 '태조 왕건'도 비뚤어진 궁예의 인기를 넘지 못했다.

'공남'에서 박시후가 연기한 김승유는 문무를 겸비하고 집안까지 좋다. 당대 최고 권세가의 막내아들로 종학(종친교육기관)의 직강(교사)이 될 만큼 뛰어난 학문적 소양을 갖췄다. 희고 고운 피부에 준수한 외모, 한성부 판관과 진검 대련을 펼칠 정도의 검술도 지녔다.

그러나 다재다능한 설정이 지나쳐,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덜하다.

미남배우 송종호가 연기한 신면은 다른 김승유와 정조보다 격정적이다. 그는 두 남자의 죽마고우에서 '야수' 수양대군의 페르소나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발톱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이민우는 양녕대군, 연산군 등 일탈적인 캐릭터를 연기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허술한 난봉꾼에서 진지남을 성공적으로 오간다.

경혜 공주나 친구들에게 사뭇 애교며 주책을 떨다가도 때론 진지한 모습으로 바뀌어도 괴리감이 없다. 그의 이런 면이 여성들에게 연민과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김승유-이세령 커플은 키스신까지 보여주면서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사진출처='공주의남자' 방송 캡쳐.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 더 슬픈 경혜 공주-정종 커플의 사연

김승유-이세령 커플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대본에도 문제가 있다.

박시후는 미운 말을 골라서 하거나 무심하게 툭툭 뱉는 말투로 김승유에 약간의 입체감을 부여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간 '검사 프린세스', '역전의 여왕'(이상 2010년) 등의 현대극에서 보여준 얄미운 '까도남(까칠한 도시남자)'의 매력은 절반도 발휘하지 못한다.

말을 타 보고 싶어하고, 경혜 공주에게 옷을 바꿔 입자고 제안하던 세령은 '적극적 여성상'을 단 2화 만에 상실했다. 아버지 수양대군에게 순종하고 연인을 생각하며 눈물짓지만 정작 다가가지 못하는 수동적 여성상에 그치고 있다.

정작 울어야 할 사람은 수양대군에게 처참하게 당하는 경혜 공주인데, 이 철부지 아가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임 생각하며 눈물 바람이다. '추노'의 언년이 못지않은 민폐녀다.

반면 경혜 공주는 필요에 의해 주체적으로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를 배필로 선택했다. 하지만 세령 때문에 경혜 공주의 선택은 좌절된다.

경혜 공주는 '서방님' 정종에게 "요행으로 부마 자리를 얻었다 해서 지아비 노릇할 생각 말라"라고 쏘아붙이기까지 한다. 반면 벼락출세한 정종의 입장에서 경혜 공주의 태도는 원망스러울 뿐이다.

'공남'이 멜로 사극인 만큼, 이 같은 '커플의 자연스러운 관계설정'이 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공남'의 애초 설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종-경혜 커플의 비극성이 승유-세령 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

역사상 단종은 폐위되고 정종은 사육신 사건(세조 2년)에도 휘말린 끝에 능지처참된다. 드라마는 경혜 공주가 관비(官婢)가 되었다는 야사를 따르지만, 실록은 재산은 몰수당했으되 공주의 직위는 잃지 않은 것으로 쓰고 있다.

이는 KBS의 '공주의 남자' 공식 홈페이지에도 일부분 소개되어있으며,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관련 역사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도 많다.

부부의 아들 정미수는 훗날 도승지 등 당상관의 자리에 오르지만, 남동생 및 남편을 차례로 수양대군에게 잃었다는 점에서 경혜 공주의 삶이 비극적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윤 교수는 "승유-세령 커플의 작위적인 애절함에 공감가지 않는 게 문제"라며 "스토리와 제대로 엮이지 않는 '관상용' 캐릭터들"이라고 평했다. "제작진은 시청자에게 '이들은 비극적 운명'이라고 강요하지만, 시대적 맥락과 따로 노는 느낌이다"라는 게 윤 교수의 평이다.

이민우는 시종일관 표정이 살아있는 연기를 펼친다. 사진출처='공주의남자' 방송 캡쳐.




▶주인공이 바뀔 수도 있다?

"50부작 미실전과 후속 12부작 비담전".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 방영 당시 돌던 농담이다. 미실의 인기가 선덕여왕 덕만을 능가하자 주인공을 위협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덕만과의 러브 라인도 유신에서 비담으로 넘어갔다.

드라마가 인물 간의 대립 구도로 흘러갈 경우, 무게 중심이 다른 인물에게로 아예 넘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공남'에서도 김종서(이순재)와 수양대군(김영철)은 극한 대립 구도를 띠고 있다. 신숙주, 한명회, 사육신 등이 끼어든다 해도 결국 이들을 대신하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물이 아니라 커플 간의 대립구도를 쓸 경우 향후 캐릭터들의 인기도에 따라 극의 중심을 바꾸기가 용이하다. 긴 호흡으로 가는 드라마이니 만큼 시간적 여유도 있다. '공남'은 24부작으로 이제 겨우 3분의 1을 지났다.

평론가 이문원 씨는 "스토리의 중심부에서 4명의 인물을 엮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호텔리어(2001)에서 시청자들은 배용준-송윤아 커플만 기억할 뿐, 김승우-송혜교 커플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개 드라마 제작사는 '커플 간 대립구도'를 처음부터 구상하며, 향후 추이에 따라 주연-주조연의 비중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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