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영화 \'전국노래자랑\' 제작자로 나선 이경규. 사진제공|흥미진진
그가 제작자로 나선다고 소식에 사람들은 "왜?"라고 묻는다. 이경규(53)의 첫 영화인 '복수혈전'의 실패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각인되면서 그가 영화를 가볍게 본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또 예능인으로서의 삶이 영화의 진지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이경규를 직접 만나면 그런 편견과 의심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영화 제작자로서의 이경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게다가 겸손하다. TV에서 '버럭'하던 사람이 어디 갔나 싶을 정도다.
이경규는 이번에 각오를 단단히 했다. 영화 '전국노래자랑'을 홍보하기 위해 앞장서서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또 데뷔 이래 좀처럼 하지 않던 인터뷰를 하며 취재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 만큼 이번 영화는 이경규에게 중요하다.
"’제작자가 앞에 나서서 홍보를 해야 하는 건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서는 것도 그렇고, 안 나서는 것도 그렇고. 딜레마에 빠진 거죠. 그래도 이번 영화를 5년 가까이 준비했는데 기왕 할 거면 몸을 던지는 게 낫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어요."
2007년 '복면달호' 이후 6년 만에 제작자로 나선 이경규는 이번 영화를 위해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시나리오를 20번도 넘게 고쳤고 몇몇 영화인들에게 외면도 당했다. 이경규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이 영화는 기적처럼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제가 추구하고자 했던 재미와 감동을 관객에게 주고 싶었어요. 억지 웃음과 눈물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그래서 이 영화를 끝까지 하고 싶었어요."
이경규는 인터뷰 내내 "영화는 참 힘들다"고 한숨을 쉬며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30년 넘게 예능에서 활동하며 ‘황제’로 대접 받고 있는 이경규가 영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재미’였다. 영화가 주는 재미를 포기하기 힘들다고 한다.
"재밌어요. 영화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캐스팅을 하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내가 쓴 이야기가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고. 이게 얼마나 재밌어요. 게다가 영화평을 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예요. 혹평을 받는 것도 제겐 즐거움이에요.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즐거워요. 묘한 매력이 있죠."
5년 동안 머리를 싸매며 만든 영화 ‘전국노래자랑’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이경규는 기쁘면서도 자식 같은 영화를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혹평도 각오하고 있어요. 저는 제 작품이 좋지만 관객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건 겸허히 받아들여야죠. 각오한 만큼 긴장도 되고 스트레스도 받아요. 중압감이 엄청나더군요."
이경규는 "이번 영화가 안 되면 충무로를 떠나야지"하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그에게 진짜 그만 둘 생각인지 물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너무 억울해서 펑펑 울 것 같아요. 제가 담배를 끊은 지 2년 5개월 정도 됐어요. 끊은 그날 비가 왔어요. 우산을 쓰고 집에 가며 정말 펑펑 울었어요. 수십 년간 나를 지탱해준 친구(담배)를 내 몸 하나 살겠다고 버리다니… 영화도 그럴 것 같아요. 잘 안되면 손해가 엄청 커요. 돈 문제도 그렇지만 제 직업에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결국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하하."
개그맨 겸 영화제작자 이경규. 사진제공|흥미진진
이경규가 코미디계의 대부이자 국민 MC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경규는 최근 종영한 '남자의 자격'부터 '힐링캠프' 등 브라운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성기 못지 않은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브라운관을 지키는 동안 허무함을 느낀 적은 없었을까.
"있죠.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동시에 사생활은 과감히 버려야 하잖아요. 누구는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불편한 건 사실이에요. 살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용납이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게다가 시청자들의 평가가 굉장히 급박하게 변해요. 잘하면 뜨거운 반응을 보이다가 못하면 급격하게 차가운 반응을 보이니까요. 그럴 땐 저 역시 인간이라서 마음이 어렵죠."
방송상에 보여지는 독한 이미지도 궁금했다. 실제로 만난 이경규는 온화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 앞까지 기자를 배웅해주기도 했다. 그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며 "방송을 재미있게 하려다 보니 욱하는 이미지가 고착돼 오래가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지만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그는 “5년 후에는 내가 연출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독은 꼭 하고 싶어요. 시나리오도 생각 중이에요. 그런데 이번 영화가 실패하면 누가 제 영화에 투자하겠어요. 하지만 영화가 잘 되면 제가 하고 싶지 않아도 영화를 만들라고 등을 떠밀겠죠.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이번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