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로 물러나는 전설 이선규 V리그 15년을 말하다

입력 2019-05-09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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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이선규. 스포츠동아DB

V리그의 전설이 2018~2019시즌을 마치고 추억의 세계로 물러났다. KB손해보험 이선규(38). 남자부 최다블로킹 기록(1056개)을 보유한 그는 지난 3일 은퇴를 발표했다. 문일고~한양대를 졸업하고 2003년 실업배구 현대자동차배구단에 입단해 V리그 15시즌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들블로커로 활동해온 그가 마지막 봄 배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었다.

V리그 현대캐피탈~삼성화재~KB손해보험을 거치는 동안 2번의 FA 재계약을 맺은 이선규는 이번 FA시장에서도 KB손해보험과 재계약했지만 더 이상의 선수생활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V리그 남자부 최초 1000블로킹, 미들블로커 최초 3000득점, 블로킹상 4회 수상, V리그 10주년 베스트7, 한 경기 최다블로킹 타이(11개), 역대 2위(487경기) 출전, 정규리그 우승 5회, 챔프전 우승 3회, 2006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 2005아시아선수권대회 공격상, 2007아시아선수권대회 블로킹상 등이 이선규가 걸어온 화려한 발자취다.

이선규의 은퇴 보도자료에는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니 시원섭섭하다.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는 것이 오랜 시간 이어온 선수생활을 좋게 마무리할 방법이라 생각해서 결정했다. 이제는 선수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한국배구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그 동안 많은 응원과 사랑을 주신 팬 여러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은퇴소감이 있었다. 힘든 선수생활을 마친 선수의 입에서 죄송하다는 표현이 나온 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이제는 일반인이 된 이선규와 연락을 했다.

글로 남기지 못한 나머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 마지막 봄 배구 불참이 두고두고 아쉬운 이선규

- 은퇴소감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독특하게 들렸다. 무슨 뜻인가?

“KB손해보험으로 이적하면서 봄 배구 출전을 목표로 했다. 구단과 팬들도 그 것을 원했을 텐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은퇴해 미안하다는 뜻이다.”

- FA계약을 하고 은퇴하는 독특한 모양새다.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

“시즌 막판부터 은퇴를 생각해왔다. 그래서 시즌 뒤 구단에 은퇴의사를 밝혔다. 구단에서 먼저 ‘FA 미계약 상태로 남으면 모양이 좋지 않으니 계약을 하고 은퇴하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구단 뜻대로 했다.”


- 계약을 했으니까 나쁜 마음을 먹으면 계속 선수생활을 해도 된다. ‘은퇴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면 구단에서 꼼짝없이 돈을 다 줘야 하는데.

“구단하고 신뢰관계가 있었고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 지난 시즌 플레이하는 것으로 봐서는 몇 년은 더 뛸 수 있을 것으로 보였는데 은퇴를 결심한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다. 체력적인 문제가 크다. 그동안 몸 관리를 잘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점점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 어떤 부분이 떨어지는지 운동을 안 해본 사람은 잘 모른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심리적인 것도 있다. 지난시즌 2라운드 때 허리를 다쳐서 고생했다. 그때 부상 탓에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나도 이제 은퇴해야 하나’ ‘관리해도 힘든 나이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잘 관리하고 유지해왔지만 구단과 팬들에게 좋은 모습일 때 은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해왔다. 예전에 선배들이 방출 당하듯이 은퇴하는 것을 많이 봤다. 구단으로서나 내 입장에서도 그런 모습보다는 좋게 마무리하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 큰 키 덕분에 운명처럼 다가온 배구, 늦었지만 최선을 다하다

- 배구 엘리트생활의 연속이었는데 어떻게 배구와 인연을 맺었나.

“1996년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배구를 처음 시작했다. 당시 192cm의 키였다. 덕분에 배구를 권유받았다. 힘들게 운동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출발이 늦었기에 기초를 따라잡기 위해 개인운동을 많이 했다. 대부분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는데 중학교 3학년 때 하면 한계가 있다. 기본기 훈련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프로에 와서도 기본기 약점을 티내지 않으려고 혼자서 많이 훈련했다.”

- 성인배구 생활만 17년을 했다. 슈퍼스타는 부상이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선수생활동안 수술 한 번 받지 않았다.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부상은 자기관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데 큰 부상 없이 은퇴할 수 있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튼튼한 몸을 주신 부모님께도 잘 관리해주신 지도자 선생님과 트레이너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 예전 하경민 선수는 눈뜨자마자 운동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은퇴한 뒤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은퇴하고 나니 무슨 생각이 먼저 드는가.

“아쉬움이 크다. 아직은 은퇴했다는 실감이 100% 나지 않는다. 매일 해왔던 배구다. 계속 단체생활을 해왔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느낀다. 지금도 다이어트 수준의 운동은 일주일에 2~3번 건강해지려고 한다.”

- 선수생활과 일반인생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선수 때는 매일 다음날 컨디션을 걱정하면서 지내야 한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은 감기에 걸려도 큰 걱정이 없지만 선수 때는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지금 감기가 걸려 오래 됐는데도 그런 걱정이 없어서인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 V리그에서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이 가운데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은.

“1000블로킹이다. V리그 출범 때 ‘1000블로킹이 목표’라고 했다. 당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생각했다. 1000블로킹 달성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자 감회가 새로웠다.”

● 이선규가 꼽는 가장 기뿐 순간과 아쉬운 순간

- V리그 15시즌 동안 가장 기억나는 순간과 아쉬운 때를 꼽는다면.

“현대캐피탈에서 처음 우승했던 2005~2006시즌이 가장 기억난다. 삼성화재를 이기고 처음 우승했던 때라 더 기억난다. 아쉬운 것은 지난 2시즌 동안 KB손해보험이 봄 배구에 가지 못한 것이다. 특히 2년 전 시즌 막판에 알렉스가 배탈로 출전하지 못한 그 경기가 아쉽다. 그 경기를 이겼더라면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가장 아쉽다. 그때 봄 배구에 나갔더라면 은퇴를 하더라도 발걸음이 훨씬 편했을텐데.”

- 17년 성인배구 생활동안 3개 팀을 경험했다.

“3탬 모두 기억에 남는다. 결국 원클럽 선수로 남지는 못했지만 많은 경험을 했다. 그 것이 오랜 선수생활에 도움을 줬다. 특히 삼성화재에서의 선수생활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첫 이적 때 신치용 감독님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운동은 힘들었지만 신인의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통합우승도 경험했다.”

- 마지막 팀인 KB손해보험에서의 생활은.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의 장점과 문화를 후배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권영민 형과 함께 생활과 운동하는 자세에 영향을 주려고 했다. 확실히 팀마다 문화는 달랐다. 현대캐피탈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운동에는 체계가 잡힌 팀이고 삼성화재도 규율이 탄탄한 팀 문화가 있었다. 두 팀은 비슷했다.”

- 미래의 이선규를 꿈꾸는 배구 유망주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온다고 말하고 싶다.”


- 감사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어렵다. 배구하면서 지켜봐주신 모든 은사님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기회가 되는대로 일일이 찾아뵙고 은퇴인사를 드릴 생각이다.”


- 이제 KB손해보험의 유소년 지도자겸 스카우트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구단에서 좋은 기회를 주셨다. 감사드린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구단과 상의해야 한다. 배구와 계속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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