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훈련장 가다] 수영장으로 간 KB손해보험 선수들

입력 2019-06-24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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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KB손해보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많은 먹이를 찾는다고 했다.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해 먼저 시즌을 끝낸 KB손해보험은 다음 시즌 준비도 빨랐다. V리그 출범 이후 단 한차례 준플레이오프에 출전한 것이 전부였기에 KB손해보험의 팀 시계는 항상 다른 팀보다 빨리 움직였다. 이번 비 시즌에도 예외는 없었다. 가장 바쁘게 다양한 곳에서 독특한 훈련을 하며 다가올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V리그 팀들의 5~8월 비시즌 훈련은 선수들이 부상 없이 시즌 36경기를 소화할 기초체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시즌을 마치자마자 귀중한 휴가를 다녀온 선수들은 다가올 힘든 시즌준비가 사실 막막하다. 그래서 예상되는 괴로움의 강도를 지레 짐작하며 은퇴를 결정하는 베테랑들도 많다. 그만큼 시즌을 앞둔 준비과정은 치열하고 힘들다. 고(故) 황현주 전 현대건설 감독은 “비시즌 때 우리 선수들이 땡볕에서 어떤 훈련을 받는지 한 번이라도 봤다면 절대로 연봉을 깎자는 말을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힘든 고비를 넘겨야 겨울 시즌 때 코트에서 최상의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다.

각 팀마다 체력단련 방법과 기간은 달라도 목표는 같다. 부상방지가 첫 번째다. 그 다음은 시즌 내내 꾸준한 몸 상태를 위해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것이다. 한 때 많은 남자구단들은 삼성화재의 체력단련 노하우를 벤치마킹했지만 요즘은 팀마다 다양해졌다. 시즌 내내 부상선수로 골치를 앓았던 OK저축은행은 일본인 트레이닝 코치를 선임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KB손해보험도 권순찬 감독 체제 이후 비시즌 때 체력훈련 방법이 많이 달라졌다. 권 감독은 전력분석과 체력담당 파트를 독립시켜 전문가들이 직접 책임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행히 지난 시즌 성과가 있었다. 초반 예상외의 줄부상으로 고전했지만 시즌 막판까지 선수들의 몸 상태가 꾸준히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난 시즌에 검증된 훈련 프로그램과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

사진제공|KB손해보험


KB손해보험은 3~4월 근지구력 강화훈련을 시작해 5~6월 근력의 파워를 강화시키고 7~8월에는 그 강도를 높여 8월에는 선수들이 최고의 근력파워를 가지게 하는 시간표대로 움직인다. 9월부터는 웨이트&서키트 트레이닝을 반복하며 피곤한 선수들의 몸을 차츰 다운시키는 과정을 밟아나간다. 이때부터는 시즌에 들어갈 때까지 60~80%의 훈련강도로 몸 상태를 유지시킨다.

물론 체력훈련 도중에도 배구공을 만지는 기술훈련도 하지만 8월까지는 체력강화가 우선이다. 그래서 KB손해보험 선수들에게는 8월이 가장 힘든 계절이다. 체력강화는 반복훈련 외에는 정답이 없기에 지루하다. 가뜩이나 몸이 힘든데 지루하기까지 하면 훈련성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구단이 비시즌에 국내의 다양한 곳에서 전지훈련을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선수들이 좀더 훈련에 집중해 효과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집이 아닌 곳에서 선수단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간의 팀워크를 다지는 부수효과도 있다.

KB손해보험은 비시즌 동안 가장 바삐 움직였다. 경상남도 사천(3월25~29일)~제주도(4월24~29일)~강원도 속초(5월30~31일) 등을 돌아다니며 전지훈련을 했다. 해안도로 달리기와 성산 일출봉, 한라산 정상 등반, 미시령 오르막길 달리기 등으로 선수들의 지구력과 인내심도 테스트했다. 각 팀마다 장거리 달리기에 특화된 선수들이 있다. 지금 KB손해보험에서는 최익제가 단연 1위다. 누구도 못 따른다. 권순찬 감독도 삼성화재 선수시절 설악산 주파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산악달리기를 잘했다. 그의 기록은 지태환이 깼다.

근파워 강화기간인 요즘 KB손해보험은 매주 수,토요일에 흥미로운 훈련을 한다. 스피닝과 수영이다. 선수들은 수요일과 토요일 각각 2시간씩 수원월드컵 경기장의 스포츠센터를 찾아 색다른 체력단련 수업을 받는다. 2년째 하다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다만 이번 비시즌에 KB손해보험에 새로 합류한 선수들에게는 생소한 훈련이다. 기자가 훈련장을 찾았을 때인 19일에는 선수들이 오전 11시부터 스피닝을 시작했다. 선수들은 스피닝용 사이클을 타고 강사의 지시에 맞춰 다양한 몸동작을 했다. 50분 정도 진행되는 스피닝을 제대로 하면 800~1000킬로칼로리의 열량이 소비된다고 했다.

사진제공|KB손해보험


흥겨운 음악이 나오는 가운데 선수들은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양한 동작을 하며 페달을 밟았다. 선수들의 체력을 담당하는 이병희 수석트레이너는 “다양한 자세로 공을 때리고 받는 배구는 동적인 운동인데 정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는 모자라 스피닝을 하고 있다. 코어근육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선수들은 큰 근육을 다치기보다는 이를 잡아주는 작은 근육을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체력단련은 근육을 무작정 키우지 않고 세분화 시켜서 작은 근육들을 강화시키는 것에 목적을 둔다”고 설명했다.

당초 선수들은 따로 스피닝 훈련을 했지만 최근에는 같은 시간에 스피닝 수업을 드는 일반인과 함께 받고 있다. 트레이닝센터는 일반인 수강자들에게 일일이 “배구선수들과 함께해도 되겠냐”며 의사를 물어본 뒤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몇 년째 스피닝을 해온 일반인들은 선수들과의 합동훈련이 신선한 자극을 주고 경쟁심도 생겨 훈련효과가 좋다고 했다. 스피닝을 마친 선수들은 곧바로 수영장으로 간다. KB손해보험은 2개의 레인을 빌려 따로 수영을 한다. 이를 통해 하체의 근육을 풀어주면서 몸의 균형을 잡는 효과를 기대한다.

KB손해보험 선수들이 수영장에 들어서면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몰린다.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군살 없는 몸과 식스팩을 소유한 선수들의 수영복 몸매는 완벽했다. 선수들은 50분 가량 자유형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선수끼리 경쟁시키는 팀간 릴레이도 있었고 폐활량을 높여주는 잠수대결도 있었다. 어릴 때 제대로 수영을 배운 양준식 김홍정 등은 쉽게 물을 헤쳐 나갔다. 반면 수영이 처음인 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워낙 힘이 좋은 선수들이라 오직 팔과 어깨의 힘과 투박한 발차기만으로도 쭉쭉 잘나갔다.

사진제공|KB손해보험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대한항공에서 이적한 김학민이었다. 처음 그의 몸을 본 이병희 수석트레이너는 “동양인이 가질 수 없는 몸이다. 왜 체공능력이 좋은지 알겠다”고 했다. 군살 없이 역삼각형으로 만들어진 몸매의 김학민이지만 뜻밖에도 수영은 초보였다. 황택의는 최근 눈에 띄게 볼륨이 커진 상체근육을 자랑이라도 하듯 수영을 쉽게 했다. 선수들은 수영수업을 즐겼다. 밝은 표정에서 훈련의 성과는 누가 봐도 짐작이 갔다. 선수들이 수,토요일의 스피닝&수영훈련을 기다리는 이유는 또 있다. 이 훈련을 끝으로 수요일 오후와 토, 일요일 휴일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KB손해보험은 다가올 시즌을 앞두고 주전세터 황택의를 제외한 5자리의 주전선수 얼굴이 확 달라졌다. 권순찬 감독 체제에서 김요한~이강원~하현용~손현종이 팀을 떠났다. 이선규는 은퇴했고 강영준은 OK저축은행의 코치로 갔다. 황두연은 입대했다. 외국인선수도 지난 2년간 알렉스~펠리페에서 이제는 산체스다. 대한항공 시절 산체스와 가장 호흡이 맞았고 관계가 좋았던 김학민도 선수생활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노란색 유니폼으로 바꿔서 입었다.

권순찬 감독은 “주전 선수들이 바뀌면서 팀의 체질과 문화도 달라졌다. 이제 이 선수들끼리 마음을 모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정신없는 변화 속에서 새로운 KB손해보험의 배구를 만드는 작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물론 그 변화의 바탕은 부상 없이 겨울을 나는 선수들의 탄탄한 체력이다. KB손해보험뿐만 아니라 지금 남녀구단의 모든 선수들은 코트에서 보여주는 단 하나의 플레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초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그들의 열성적인 노력을 응원한다.

수원|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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