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난장’ 김민호PD, 한국 음악계 뒤집을 ‘난장판’ 꾸미는 기인

입력 2016-09-05 1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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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난장 사운드 페스티벌

사진=난장 사운드 페스티벌

9월 3일과 4일 광주에서는 국내 페스티벌 시장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10년간 묵묵히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소개해온 광주 MBC의 대표 음악프로그램 ‘문화 콘서트 난장’이 제 1회 난장 사운드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이다.

난장 사운드 페스티벌은 확실히 예상치 못한 희귀종 페스티벌이다.

부산 락페정도를 제외하면 수도권 이외의 뮤직 페스티벌이 성공한 사례가 없음에도 광주에서 공연을 진행하며, 게다가 최근 페스티벌의 트렌드가 EDM, 힙합장르로 옮겨간 상황에서 모든 라인업을 밴드로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장 사운드 페스티벌에 관심의 주체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응원과 기대가 아니라 ‘과연 관객이 얼마나 올까’라는 의구심이었다.

일단 페스티벌의 성패 여부를 측정하는 기준인 관객수에 대해 밝히자면, 주최 측 추정 3일 800~1000여명, 4일 2500~3000명 정도로, ‘예상대로’ 관객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공연 기획자라면 아쉬워할만한 상황이지만, ‘문화 콘서트 난장’에 이어 난장 사운드 페스티벌까지 탄생시킨 광주 MBC의 김민호PD에게는 일말의 아쉬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말에서는 강한 자신감과 신념이 느껴졌다.

실제로 김민호 PD는 적자를 볼 것 같다면서도 “일단은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하면 어떻게든 이해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난장’도 내가 음악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는데, 처음 만드는 게 힘들더라. 만들어 놓으니까 내가 이걸 가지고 가고, 버티는 건 할만하다. 만들기가 힘든 거지 만들어 놓으면, 10년간 ‘난장’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이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페스티벌을 만드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지 사람이 많이 오는 건 크게 생각을 안했다”라고 난장 사운드 페스티벌의 탄생 그 자체가 가장 큰 성과임을 강조했다.

또 김민호 PD가 광주에서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데에도 큰 뜻과 이유가 있었다.

김민호 PD는 “아마도 서울 근교에서 했으면 꽤 많이 왔을 거다. 페이스북에 처음 홍보했을 때 ‘광주 너무 먼데’라는 글이 수 백개가 달렸다. 공연을 보기위해 수도권에 가야한다는 인식을 깨트리는 게 쉽지 않더라”라며 입을 열었다.

이어 김민호 PD는 “‘문화콘서트 난장’이 30년, 40년 이어질 이유를 찾기 위해 외국 사례를 찾아보니 미국의 가장 오래된 라이브 프로그램을 텍사스 오스틴에서 만든다는 걸 알게 됐다. 뉴욕이나 LA같은 대도시가 아니다. 텍사스의 ‘오스틴 시티 리미츠’라는 프로그램이 43년인가 하고 있더라. 솔직히 우리나라에서는 텍사스 오스틴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라며 “그런데 이 ‘오스틴 시티 리미츠’의 영향을 받아 텍사스 오스틴에서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가 열리게 됐고, ‘오스틴 시티 리미츠 페스티벌’도 열리고 있다. 오래하다 보면 문화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도 페스티벌을 하게 됐다”라고 광주를 텍사스 오스틴과 같은 음악 도시로 만들고픈 희망을 드러냈다.

사실 김민호 PD가 페스티벌을 처음 떠올린 건 ‘문화콘서트 난장’이 방송을 시작하고 2년 후인 2009년이다. 하지만 결국 그 때는 성사되지 못했다.

김민호 PD는 “2009년에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처럼 하려 했다. 그땐 단순하게 ‘우리가 2년간 했으니 출연한 팀 모아가지고 하자’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모으기가 힘들더라”라고 털어놓으며 웃었다.

2009년에서 7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페스티벌은 성사됐지만, 그만큼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개최할 시간과 경험은 늘어났다.

김민호 PD는 “‘난장’ 방송이 10년인데, 방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는 ‘5년 정도 하면 광주가 음악 도시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순진했던 거 같다. 방송만해선 안 되겠고, 외연을 확장해보자고 생각했다. 광주가 문화 도시라고 하는 데, 환경적인 여건은 낙후됐다. (난장을 통해)음악으로 뭔가 앞서가지 않을까 했는데, 10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았다. 앞으로 10년은 다르게 해봐야지라는 생각으로 페스티벌을 준비했다”라고 1회성 이벤트가 아닌 10년, 20년을 보고 개최한 페스티벌임을 밝혔다.

또 그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난장’은 100% 리얼 라이브를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도 쌓았다.

이날 페스티벌에 참여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이구동성으로 ‘국내 페스티벌 중 최고의 사운드’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노하우의 결과물이다.

김민호 PD는 “미국이나 영국의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 음악적인 인터뷰와 공연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도 음악 외적인 이야기보다 보다 음악 얘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음악프로그램이 예능화 됐다. 그러니 앨범을 발표하는 사람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어졌다. ‘난장’같은 경우에는 음악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이다. 음악이 주가 되려면 공연 하는 것 자체, 공연하는 그 사람들이 주가 돼야한다. 우리는 연출을 위해 (아티스트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말하지 않는다. 카메라 각도가 안 맞으면 뮤지션에 우리가 맞추는 거지 우리에게 맞춰달라고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 어떤 것이든지. 라이브 프로그램이라면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난장’이 음악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자세를 밝혔다.

난장 사운드 페스티벌이 개최된 이유 중 빼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의 인물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 반이다. 실제 난장 사운드 페스티벌의 첫날 헤드라이너는 브로큰 발렌타인과 동료 가수들의 반 트리뷰트 무대였다.

김민호 PD는 “작년에 반이 죽고 나서, 이 친구가 락보컬 중에는 잘하는 보컬인데 기념하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보면 반 때문에 페스티벌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페스티벌 슬로건인 ‘노래하자! 세상이 변하는 그날까지’도 원래 반 좌우명이다. ‘난장’이 해온 ‘라이브 음악이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는 기치도 반의 생각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김민호 PD 스스로도 ‘노래하자! 세상이 변하는 그날까지’라는 슬로건을 굳게 믿고있는 사람이었다.

김민호 PD는 “음악이 세상을 변하게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큰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음악이 부수적인 게 됐다. 그래도 ‘난장’을 10년간 하다보니 음악은 아직도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런... 여튼 ‘난장’ 자체가 라이브음악이나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니 그걸 오프라인인 페스티벌로 이어져 시너지를 냈으면 한다”라고 광주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이 대한민국의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엎을 날을 차근 차근 준비했다.

광주|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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