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가 봤을 때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가수 겸 배우 진영에겐 인생 작품이다. 2014년 86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수상한 그녀’로 연기를 시작한 후 ‘칠전팔기 구해라’ ‘맨도롱 또똣’ 등 유명한 작품들을 통해 배우의 길을 걸었으나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제대로 배우 진영의 존재감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진영에게 인생 작을 뽑아달라고 묻지 않았다. 진영은 이미 ‘구르미 그린 달빛’ 이후의 그가 속한 그룹 B1A4와 진영 개인이 만들어갈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5년차 연예인의 겸손한 말에서부터 대화는 시작됐다.
“꾸준히 연기했었는데 이번에 ‘신인 배우인줄 알았다’ ‘작곡돌이다’ 같은 반응을 들었어요. 물론 그동안 활동해왔던 게 허무해질 수 있는 말들이기도하죠. 하지만 저와 B1A4를 알릴 수 있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어요. 연기자로서도 이제 시작이고, ‘구르미’ 이후가 저에겐 더 중요하잖아요. 가수로서도 팬들이 오래 기다려서 컴백하면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제야 모든 게 시작인 셈이죠.”
가수, 배우가 아닌 ‘연예인’이 꿈이었던 진영은 중학생 시절 혼자 상경해 단역 오디션을 지원했을 정도로 열정 있는 소년이었다. 물론 현재의 소속사를 만나 가수로 먼저 데뷔했지만 연예인이라는 진영의 큰 그림은 어느새 조금씩 모양을 갖춰 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현재 일에 빠져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 촬영과 그룹 아이오아이(I.O.I)의 ‘잠깐만’ 곡 제작을 동시에 진행할 정도다.
진영은 “일정이 빠듯했지만 곡 의뢰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하면 시간을 쪼개서 쓸 지부터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굉장히 즐겁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워커홀릭이 돼 버렸어요. 스케줄이 있으면 보통 하루에 2시간정도 자는데요. 오래 잘 수 있는 날에도 자동으로 눈이 떠지니까 그 부분이 아쉽죠. 또 예전에는 음악을 마냥 즐기면서 들었는데 이제는 제가 음악을 만들다보니 분석하면서 듣게 되더라고요. 편안하게 즐기지 못하게 됐어요.”
진영은 ‘다량의 업무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냐’는 질문에 긍정의 끝을 보여줬다. 그 중 “인생 뭐 있어”라는 진영만의 주술은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은, 이른바 진영매직(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조어 ‘박보검매직’에서 차용)이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아니 스트레스 받는 걸 싫어해요. (웃음) 스트레스 받기 시작하면 저는 일단 모든 일을 중지하죠. 한 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사고해서 스트레스 최소화하려고 하는 이유에요. 데뷔 초에 여러 일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아보니까 점점 스스로를 변화시키게 되더라고요. 또 연예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자기의 생각이 확고하지 않고 마음이 약해지면 무너지더라고요. 세게 마음을 잡아야해요.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인생 뭐 있어’거든요. 인생 대충 살자는 게 아니라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겁먹을 필요 없어’에요. 저를 풀어주는 주문 같은 말이죠.”
단단한 내적 담금질은 오히려 진영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었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호평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진영의 열린 사고 덕분. ‘구르미’ 주요 청춘 배우들 중 가장 연장자였던 그는 “오히려 자존심을 버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내가 형, 오빠라는 책임감은 있었지만 자존심을 버리려고 했어요. 그 친구들은 저보다 연기적으로 선배잖아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자존심을 세우면 갈등이 생기죠. 동생들이 연기적으로 조언을 해주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저를 변화시켰어요. 그리고 솔직히 많은 걸 배우고 싶었습니다.(웃음)”
진영은 자존심을 버린 대신 극찬 세례를 받았다. 꽃선비 김윤성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고, 엠넷 ‘프로듀스101’을 통해 진영의 다정한 면모를 눈여겨 본 ‘구르미’ 제작진의 안목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감독님이 ‘프로듀스101’을 보셨대요. 저를 다정하고 자상하게 봐주셔서 윤성 역으로 오디션이 들어온 거죠. 음... 윤성이는 여자를 잘 아는 거라기보다 여유가 넘치는 남자에요. 여유가 있으니 여자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윤성이가 선수이긴 해요.(웃음)”
데뷔한 후에는 연애 경험이 없지만 진영은 실제로도 윤성처럼 사랑에 올인하는 남자다. 그는 “데뷔 전, 고등학생 때는 사랑을 많이 해봤다. 위험한 스타일인데 나는 연애할 때 올인한다”고 말했다.
“데뷔 후에는 연애 할 시간이 없었어요. 데뷔 초에는 연애금지령이 있었는데 그게 풀려도 막상 뭐 (하하하하) 할 일이 많아서 미루다 보니 연애를 못하게 되더라고요. 자작곡도 학생 때 제 연애담이 많아요. 그리고 또 저는 사랑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요. 일부러 이것저것 들으려고 하죠. 좋아하는 영화 장르도 원래는 SF이었는데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를 본 이후부터는 로맨스물에 완전 빠졌어요.”
현재 진영은 배우와 아이돌의 경계에 놓여있다. 과거 연애 경험까지 끄집어내 역할을 잘 소화해야하는 연기자인 동시에 사소한 애정표현 하나도 팬들을 위해 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신비해야할’ 아이돌인 셈. 한 예로 ‘구르미’ 청춘들과 함께 한 공식 행사에서 진영은 아이돌 특유의 팬 서비스(남다른 윙크, 하트 모양 등)를 선보여 온라인에서 ‘배우와 아이돌의 차이_jpg./gif.'라는 게시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도 그 사진들 봤어요. (웃음) 아이돌이라 그런가~? 그런 팬서비스에 아주 익숙합니다. (하하) 가수 그룹으로도 또 저 개인으로도 후회 없이 일하고 싶고, 살고 싶어요. 후회를 최소화하는 게 목표죠. 일 할 때 좀 더 생각하고 집중하려는 이유고요. 사실 배우로서의 재능? 음.. 솔직히 제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재능을 떠나서 부족하지만 배우는 과정, 더 배우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만은 확실해요.”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WM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