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기자가간다]고래고래15분…웅얼웅얼75분…

입력 2008-05-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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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만이었다. 특정 팀을 위해, 그리고 또 그들만을 향한 응원을 한다는 것. 모처럼 느껴본 신선하고 행복한 충격이었다. 아무런 감흥없이 심드렁하게 경기를 관전한 게 대체 몇 번이며, 눈물이 맺힐 정도로 흥분했던 기억이 언제 적인지…. 뭔가 자극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데스크로부터 지시가 떨어졌다. “현장체험, 이번엔 서포터스를 해볼까?” 선택권이 주어졌고, 즐거이 했다. 2년전 영국을 여행하며 관전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화이트 하트 레인을 처음 방문했던 순간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흥분의 순간순간을 스케치해봤다. ○ 자주빛 12번째 선수 선택…역사를 향해 고민을 좀 했다. ‘어느 팀이 좋을까. 어디가 괜찮을까.’ 이곳저곳 전화를 걸어 팀을 압축했다. 모든 팀이 매력이 있었지만 열성적인 서포터스로 특히 유명한 FC 서울, 수원 삼성, 대전 시티즌으로 좁힌 뒤 일정까지 고려해 세 번째를 택했다. 곧바로 대전 사무국에 연락을 했고, ‘지지자 연대’ 최해문(29) 회장을 섭외했다. “저, <스포츠동아>인데요. 이번 경기에 함께 응원하고 싶어요.” “예, 환영합니다.” 흔쾌한 대답에 마음이 좀 놓인다. 일단 날짜를 4일 경남 FC와 대전 홈 경기로 잡았다. 솔직히 김호 감독이 국내 최초로 200승을 올린다면 더 좋은 그림(사진)이 나올 것이란 속셈도 작용했다. 조광래 감독께는 정말 미안했지만. “내가 역사의 한 장면과 함께 한다.” 서포팅 전날, 들뜬 마음으로 최 회장과 최종 연락을 취했다. “대전 갈마 사거리로 쭉 내려오면 ‘OO 횟집’이 있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렇게 찾은 그들만의 사무실. 마초적 내음도 좀 나고. 취향이 독특해서일까. 이 느낌 아주 좋다. 오전 11시. 몇몇 회원들로부터 응원가를 조금 배운 뒤 곧 현장으로 떠났다.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각종 깃발과 통천, 북을 들고 이동하는 동안여러 행인이 격려한다. “오늘 축구하죠? 잘 싸워요.” 마치 선수가 된 기분인데 이들은 매주 이런 느낌을 받는단다.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 대형 마트를 가로지르자 웅장한 경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참고로 ‘퍼플 아레나’라고 불린다. 애칭이 착착 달라붙는다. 하나 아쉬움도 있다. 각 그룹별로 의견이 분분해 단합이 잘 되지 않는 점. 이들은 각자 리더를 두고, 따로 응원을 준비했다. 깃발 등 각종 도구도 따로 보관한다. 다행히 서포터스 본인들이 잘 알고 있다고 하니 곧 좋은 결론이 나올 것 같다. 최 회장은 “대전이 우리만의 팀은 아니잖아요. 분산될 수 없죠. 저희 그룹 회원이 약 500여명 정도인데, 그게 아닙니다. 150만 시민을 위한 시티즌이에요. 저희들 작은 바람이에요.”
1.응원요령 사전 교육
2.도구 들고 축구장으로
3.대전기 휘날리며…
○ 체력의 한계는 15분…청승맞게 비까지 기세등등. 호기롭게 스탠드 S석으로 들어갔다. 어지간한 걸개와 통천은 걸려있었고, 깃발 위치와 북만 설치하면 됐다. 이미 준비된 자들의 여유. 맥주 한 캔을 들이키자 세상 무서울 게 없다. ‘이제 시작이다. 휘슬만 울려라!’ 경남 선수들이 몸을 풀고, 조금 늦게 도착한 상대 서포터스가 자리하자 곧 야유를 시작했다. 맙소사. 차마 이것만은 따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전에서 이적한 공오균이 나오자 분위기가 바뀌며 친근한 척들을 한다. 선수 역시 대전 서포터스 앞으로 다가와 두 손을 치켜들고 인사를 건넨다. “(공)오균형, 자책골 하나 부탁해.” 풋, 그럼 그렇지. 한참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목청을 다듬는 사이, 폭죽이 터지고 킥오프가 됐다. 전투의 한복판. 이젠 피할 수 없다. 호기롭게 “대∼전 시티즌”을 외치고, 북 소리에 맞춰 몇 곡 뽑고나니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어∼어” 하는 동안 시작 5분만에 황병주가 첫 골을 넣었다. 난리가 난다. 마치 레딩 FC 마제스키 스타디움서 모든 팬들이 일어나 ‘고릴라 춤’을 췄던 것처럼 이쪽 스탠드는 광란의 도가니였다. 머리를 흔들고 어깨동무를 하고 한바탕 댄스를 한다. 옆에 있던 친구가 어깨를 감싸는데 안할 수 없다. 분위기에 취해 5분 정도 따라했더니 온통 땀으로 샤워를 했다. 유니폼을 벗어버리고픈 강한 충동이 몰려왔건만 관리안된 몸매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곧 욕망이 식는다. 그렇게 또 몇 분이 흘렀고, 완전히 그로기가 됐다. 주책맞게 비까지 내린다. 피하지 않았다. 응원은 커녕, 움직이기도 싫다. 목도 다 쉬었다. 몸 속에 자주색 피가 흐른다고 자부하는 민경일(20)군이 한마디 한다. “형, 안색이 안좋아요. 괜찮아요?” “아, 힘들어. 물 없냐?” 드디어 기다리던 하프타임. 신명나게 북을 치던 이현민(26)씨가 건넨 바나나 한 개에 다시 혈기가 돈다. 쉬는 시간은 늘 즐겁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이젠 남은 시간은 15분. 젖먹던 힘까지 다 끌어냈다. “축구 기자가 한 번쯤 서포터를 해봐야지”라며 격려아닌 한마디를 던진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 때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야, 먹고살기 힘들겠다. 이젠 기사 안쓰고 응원하냐?’ 오, 세상에. TV 중계에 얼굴이 나왔단다. 피곤이 싹 가신다.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스탠드까지 올라온 사진 기자가 마지막 한마디를 던진다. “힘든 척 한 번 더 해. 머플러로 땀 좀 닦아봐.” 상황 종료. 확인사살이었다. 참고로 이날 대전은 후반 동점골에 이어 종료 직전 역전골을 허용, 1-2로 지고말았다. 김호 감독의 새 역사 창조도 한 번 더 미뤄졌고…. 대전=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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