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르르’방청객‘방방’띄우는남자…방청객모집·진행조병각씨

입력 2008-05-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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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둘째 줄 여자분! 꺅~(간드러진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치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금세 수 십 명의 웃음이 ‘까르르’ 터진다. “하면 안 되는 것 세 가지. 혼자 웃기, 조용히 미소 짓기, 입 가리고 웃기∼ 안돼요. PD가 싫어해∼. 좀 오버다 싶더라도 액션 크게∼ 무조건 환하게 웃어요. 그래야 다 잡혀요. 안 그러면 카메라에 잡히는 사람만 잡혀요.”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 ‘진실게임’ 녹화 시작 10분전. 짧은 시간에 방청객을 쥐락, 펴락 하는 사람이 있다. 올 해 36세의 조병각 씨다. 조 씨는 방청객들 앞에서 레크레이션 강사처럼 주먹을 쥐었다 피었다, 박수를 쳤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녹화 때 호응하는 요령을 가르친다. 지루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지만 그는 듣는 이가 지치지 않도록 즐겁게 흥을 돋운다. 이날은 평소 무대 앞에 있던 방청석이 카메라 앞으로 이동했다. 카메라 앞에 나서게 돼 살짝 얼어있던 방청객들은 조 씨의 유쾌한 진행에 웃음과 함께 긴장이 풀렸다. 이 많은 방청객들은 어떻게 모이고, 앞에서 리드하는 조병각 씨는 누구일까. ○ 알바로 시작해 직업이 되다 조병각 씨는 세진기획이라는 이벤트 회사의 고참 직원이다. 직함은 과장. 세진기획은 현재 SBS와 KBS의 방청객 모집과 진행을 맡고 있다. SBS는 91년 개국 때부터 전체 프로그램을 도맡고 있고, KBS는 다른 회사와 함께 담당한다. 조 과장은 방청객 모집과 진행 일만 13년간 해온 베테랑이다. 96년도에 군에서 전역 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됐다. 직업명을 뭐라고 해야 하냐고 묻자 “국내에 많지 않은 직업이다 보니 제대로 된 직업명도 없다”며 머쓱해 했다. 방청객 모집부터 교육, 진행, 늦게 끝날 땐 귀가까지 모두 조씨의 책임이다. 그는 “그냥 방송을 만드는 한 명의 스태프으로 보아주면 좋겠다”며 웃었다. ○ 방청객은 어디서 오나? 조 과장의 일은 ‘오늘 몇 명의 방청객이 필요하다’는 제작진의 요청부터 시작된다. 프로그램 특성에 맞춰 연령대를 정하고 보통 직접 섭외에 나선다. 특히 이날처럼 방청객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경우는 제작진이 외모까지 고려하기 때문에 무조건 직접 섭외해야 한다. 그는 “어제는 한 여자 대학교 앞에서 4시간 이상 헤맸다”고 했다. 방청을 온다고 약속해도 3번 이상 확인 전화를 해야 한다. 제작진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만큼 이 직업엔 책임감이 필수다. 어렵게 모셔온 방청객이기에 진행도 조심스럽다. 그는 “돈 때문에 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즐겁게 방송을 즐기다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녹화 시간이 지연되면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자리는 항상 제작진과 방청객 사이다. ○ “방청료 10년 넘게 제자리… 3∼6시간 방청에 1만원도 안돼” “돈만 본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기자님은 하시겠어요?” 요즘 방청료를 물어보자 조 과장의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지 13년 동안 방청료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나마 IMF 때 떨어졌다가 회복된 수준이라고 했다. 조 과장은 “보통 3시간∼6시간 방청에 7000∼8000원입니다. 요즘 아르바이트 최저 금액이 시간당 3700원이 넘는데, 그 수준도 맞추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소정의 교통비조로 드리는 것이지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착잡해 했다. 적은 방청료에 화가난 일부 방청객이 노동부에 신고해 호출 받기도 수 십 번이고, 녹화 중간에 가는 방청객때문에 난감한 상황도 비일비재다. 행여라도 녹화가 밤 늦게 끝날 때는 택시비도 챙겨줄 수 없어 중간자 입장에서 애가 탄다. 때문에 방청객 관련 업무 중 가장 큰 난관은 모집 부분이다. 그는 “10년 전에야 방송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셔서 자원자도 많았지만 요즘은 수 시간 발품 팔아도 제 시간에 정해진 수의 방청객을 앉히는 일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다보니 이 일을 하려는 사람도 많지 않다. 대부분이 1년을 못 넘기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한 때 극심한 스트레스에 원형탈모증에도 시달렸다며 웃는 그에게 개선점을 묻자 “방송사의 제작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 ‘스타킹’ 상 받을 땐 나도 뭉클” 그래도 13년 동안 방청객 모집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조과장.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지만 보람을 찾는 곳 또한 사람들 속에서다. 그는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좋거나 상을 받을 때, 방송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스타킹’이 방송연예대상과 연예제작사협회 등에서 상을 받아 방송을 돕는 한 사람으로서 뭉클했다고. “좀처럼 웃을 일 없는 현대 사회에서 일부러라도 웃고 박수치는 일을 업으로 삼아 행복하다”는 그는 “방송을 보러 오신 분에게 해드릴 것은 없지만 즐겁게 웃고 가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유나 기자 ly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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