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스포츠클럽]격잃은명성은생명력이짧다

입력 2008-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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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사이에 두 경기의 현장중계 경험은 27년 프로야구에서 처음 겪는 희귀한 사건이었다. 12일 KIA-히어로즈의 무제한 연장승부는 자정을 넘겨 큰 화제 거리를 낳았지만 부상선수 발생과 두 팀의 주말경기 부진으로 이어졌고, 15일 KIA-SK의 대결은 윤길현의 욕설 파문으로 논란이 됐다. 현실을 무시한 무제한 연장승부는 엷은 선수층, 열약한 구장 환경, 자정이 지난 시간에 선수와 종사자들의 간단한 먹거리 조차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메이저리그를 모방한 자체가 한심할 뿐이다. 겉만 보지 말고 속을 제대로 알고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 사흘 후에 터진 윤길현의 가슴 아픈 사건은 우리 스포츠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평소 순둥이로 보였던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9점 차의 지친 KIA가 백기를 든 상태임을 감안하면 ‘아니 저 친구가 왜 저러지. 저게 무슨 행동이냐’ 가 광고가 나가는 도중의 생각이었다. 실제 광고가 나가는 동안 담당 PD는 짧은 순간 속에 그래도 팬들이 보면 더 격분할 장면은 유보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전체장면만 내보냈다. 윤길현의 모습을 보는 순간 2004년 보스턴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선수소개 때 파문을 일으킨 김병현의 손가락 사건이 오버랩됐다. 당시 현장 중계를 하면서 느꼈던 당혹감은 컸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후 곧바로 구단의 사과문 보도 자료가 나왔고, 김병현은 결코 마운드에 올라가지 못했다. 올바른 판단과 신속한 조치였다. 경기가 끝난 후 김병현을 만나 도대체 왜 그런 제스처를 취했느냐고 물었을 때 “홈구장에서 홈팀관중이 나에게 야유하는 것에 화가 났고 카메라에 잡힐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때 “어쨌든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낭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윤길현의 경우, 김성근 감독은 삼진 잡는 장면만 보았지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얼굴표정과 행동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TV를 시청한 구단 관계자가 곧바로 감독에게 귀띔이라도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경기가 끝난 후 구단의 신속한 조치가 있었더라면 사태가 이토록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스포츠계는 프로화가 되면서 승리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 권한의 남용과 편가르기가 횡행하면서 선배가 후배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구단이 선수에게 따끔한 충고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선수들의 권리는 크게 확대되었고 의무는 대중적 인기 속에 줄어들고 있다. 중계카메라에 욕설을 퍼붓고, 올림픽의 자랑스런 태극기 보다 몸 사리기에 바쁜 선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계의 현실 아닌가. 프로감독이 성인선수의 잘못까지 사죄회견을 하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학원스포츠의 정상화, 최소한의 교양과 예절, 인성교육이 동반되지 않으면 존경받는 체육인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격 잃은 명성과 인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야구해설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다.오랜 선수 생활을 거치면서 프로야구 감독,코치, 해설 생활로 야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즐긴다. 전 국민의 스포츠 생활화를 늘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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