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승부사에게가장위험한순간

입력 2008-07-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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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한국물가정보배프로기전C조본선리그
흑의 사내의 검이 <실전> 흑3으로 끊어왔다. 백은 4로 흑 한 점을 단수쳤는데 이게 문제수가 됐다. <해설1> 백1로 이었으면 그만이었다. 흑은 6까지, 백은 7로 한 점을 잡아둔다. 보기에도 깔끔하다. 이것이었다면 …. ‘승리는 나의 것이었다.’ 백의 사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양 손에 거머쥔 단도 두 자루가 부르르 떨렸다.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탓이다. 흑의 사내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실전> 흑5로 단수치니 백은 6으로 흑 한 점을 잡았다. <해설2> 백1로 잇고 싶다. 그리고 7로 이 흑을 모두 잡으러 가고 싶다. ‘흑은 8로 나오는 수가 있다. 이건 백이 안 된다.’ 백의 사내는 등줄기가 축축해짐을 느꼈다. 지금껏 잘 해 오지 않았는가. 빠른 발과 적절한 초식의 사용으로 우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일순간에 거품이 되었다. 지난 싸움이 환영으로 지나가면서, 허무함이 밀려왔다. 승부사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좌하의 공방이 계속된다(10-1 자리). 백은 어떻게든 이 흑을 잡고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흑19로 젖히는 순간 이 흑은 삶을 얻었다. 결과는 패. 그러나 백이 안 되는 패이다. ‘이래서 역전이군’ 백의 사내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패는 만들 수 있지만 좌하 백돌의 사활이 다 걸려드는 패이다. 이런 패는 애초에 싸움이 안 되는 것이다. 자본과 물량에서 이미 게임이 안 된다. “졌다.” 백의의 사내가 자신의 병기를 바닥에 던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흑의의 사내가 자신의 검을 추스렸다. “좋은 승부였다.” “아쉬운가?” 흑의의 사내가 물었다. “아니라면 오만이겠지.” “다음 번 승부 때 다시 만나지.” 흑의의 사내가 몸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점으로 화할 때까지 백의의 사내는 평원 위의 나무 한 그루가 되어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195수, 흑 불계승>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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