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조훈현,‘2500번의행복’

입력 2008-08-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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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치훈 9단이 11일 통산 2000대국을 기록해 일본에서 두 번째로 ‘2000클럽’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 최다대국기록은 ‘이중허리’라는 별호로 한 시대를 풍미한 린하이펑 9단이 보유하고 있는 2145국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루 전날인 10일, 조훈현 9단이 통산 2500대국을 돌파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이는 세계 최다대국기록이지요. 조훈현 9단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공식대국을 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최다대국 2위는 조훈현 9단과 일평생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서봉수 9단으로 2251국을 두었습니다. 조훈현 9단이 입단한 것이 1962년의 일이니 2500국 달성은 프로가 되어 46년 만에 이룬 금자탑입니다. 매년 평균 55판 정도의 대국을 쉬지 않고 두어 왔다는 얘기가 됩니다. 한 기사가 일생 2000국 이상의 공식대국을 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은 기록입니다. 무엇보다 ‘강해야’ 하고, 그것도 ‘오래도록 강해야’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에야 많이 두는 기사들은 1년에 80∼90판을 두기도 하지만, 과거 기전이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던 시절의 55판은 100판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프로기사가 1년에 출전할 수 있는 기전은 10∼20여개 정도가 됩니다. 실력이 없어 예선 첫 대국에서 거의 지는 기사들은(단칼멤버라고도 하지요) 계산해 볼 것도 없이 1년에 10∼20여 판을 두게 되는 것이지요. 그나마 기전이 많아져서 그렇지 40년 전 만해도 1년에 5, 6판 두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조훈현, 조치훈 9단의 기록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다른 기사들과는 대국 참여방식 자체가 달랐다는 점일 것입니다. 전성기 시절 주요 기전의 타이틀을 독식하다시피 했던 이들은 대국의 대부분이 도전기였습니다. 이들이 예선전에 출전하는 모습은 보기도 어려웠거니와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자체로 화제가 되던 시절이었지요. 도전기는 챔피언이 되어 도전자를 기다리는 방식입니다. 즉, 도전자가 예선전과 본선을 거치고 도전권을 획득하기까지, 느긋하게 뒷짐지고 기다리다 도전기 대국만 두는 것입니다. 당연히 바둑을 둘 기회가 많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에 55국을 채웠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도전기를 두며 살아 왔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사실 80년대와 90년대 주요 도전기의 주인공은 조훈현 9단이었습니다. 80년대 서봉수에서 90년대 이창호로 상대만 바뀌었을 뿐이지요. 조훈현 9단은 “2500대국 중 아쉬웠던 바둑은?”이라는 질문에 “진 판은 모두 아쉽다”는, 현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긴 판이나 진 판이나 모두 돌아보면 후회만 남을 뿐”이라 했습니다. ‘조훈현’이 있어 한국의 바둑팬들은 많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에게 있어 바둑이란 무엇일까요? “바둑은 내가 걸어온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했다. 깨닫기 위해서는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할 것 같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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