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수영복에구멍‘뽕’이럴수가

입력 2008-08-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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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남편 회사 때문에 제주도에서 살게 된 지 어느덧 8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 곳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 한 번 못 타보고, 제주도 역시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주도가 하와이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즐비하고, 아침이면 바닷가를 배경삼아 조깅도 하고, 사람들도 수영복을 입고 다닐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웬걸, 여기도 역시 사람 사는 동네였습니다. 처음 왔을 땐 그렇게 넓게 느껴졌던 바다도 이제는 동네 냇가처럼 친숙해져 버렸습니다. 남들은 관광지라고 신기해하며 돌아다니는 곳도 제게는 다 일상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제게 물놀이 티켓을 주며 아이들과 함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인 우리 딸과 아들을 데리고 김밥이며 과일, 음료수, 간식까지 완벽하게 챙겨서 물놀이장으로 갔습니다. 그랬는데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아이들은 그 인파를 헤집고 다니며 아주 신나게 놀았습니다. 저도 마음을 열고 어린 아이로 돌아간 듯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미끄럼틀이었습니다. 제 나이도 잊게 해주고,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한방에 날릴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안전요원의 신호에 맞춰 양손을 가슴에 가지런히 모으고 주욱∼ 미끄럼틀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그 기분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미끄럼틀 끝 부분에는 물웅덩이가 있어서 수영복이 살짝 벗겨지는 것 같은 아슬아슬함도 있고, 코로 물이 들어가는 매운 고통조차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스무번도 넘게 미끄럼틀을 타고 조금 지쳤던 저는 아이들을 불러 간식을 먹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저는 싸가지고 왔던 도시락을 가지러 가려고 급히 일어서는데 우리 딸애가 갑자기 “엄마, 수영복 엉덩이에 구멍 났어!”라며 크게 말하는 겁니다. 저는 당황해서 일단 도로 앉았다가, 다시 뒤돌아 제 엉덩이를 살펴봤습니다. 정말 커다란 구멍이 엉덩이 한 가운데에 뻥∼ 뚫려있는 겁니다. 그것도 정확하게 한가운데! 너무 창피해서 저는 급하게 수건을 두르고 다시 앉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미끄럼을 타려고 줄 서 있을 때 자꾸 히죽히죽 웃던 어떤 아저씨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너무 열정적으로 미끄럼틀을 타느라 수영복에 구멍이 났던 건데 그것도 모르고 막 돌아다니며 놀았으니,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애들은 제 생각은 안 해주고 자기들끼리 신나서 더 재밌게 놀고, 자꾸 수영장에 같이 들어가자고 졸랐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이 나이에 얼마나 신나게 놀았으면 뒤태 생각도 안 하고 그렇게 정신없이 놀았을까요? 애들이 방학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갔다 오자고 하는데, 저는 수영복도 없고 이제 그 물놀이장 다시는 못 갈 것 같습니다. 제주 외도|한정란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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