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껍데기만남는다

입력 2008-08-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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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옆에서 보면 수가 잘 보인다. 바둑돌을 쥐면 8급이지만 남의 바둑을 보고 있으면 3급수도 척척 보이는 게 바둑이다. 보이는 대로만 두면 3급이련만 바둑판 앞에 앉으면 도통 보이지가 않으니 귀신이 곡소리를 낼 노릇이다. 프로들도 마찬가지. 남의 바둑을 검토할 때는 그처럼 잘 보이는 수들이 실전에서는 안개 속에서 꼬물거린다. 검토실에 가보면 이창호, 이세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은 바둑판 앞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세계1인자들의 바둑을 난도질해대곤 한다. 그래서 ‘검토실의 제왕’이란 별명도 있다. 실전에서는 전혀(죄송!) 그렇지 못한데 검토실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인물들이다. 게다가 그 적중률이 또한 놀랍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임선근 9단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올인’의 주인공 차민수도 검토실에만 나타났다 하면 제왕 대접을 받았다. “우리가 배울 땐 이렇게 뒀잖아? 이거, 이거 … 이렇게 되면 백이 날아가는 거 아냐?” 차민수의 말에 까마득한 후배들은 눈을 초롱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참 신기한 장면이다. <실전> 백1 침입에 흑은 <해설1> 1로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백이 2로 젖혀 집으로 이득을 보는 수가 있다. 실전은 이를 꺼린 수이다. <실전> 백3에 흑은 4로 말뚝을 쳐 양쪽의 통신수단을 봉쇄했다. <해설2> 흑1로 붙여 두는 수를 생각했다면 실격. 백이 2·4로 넘어가버리면 흑은 껍데기만 남는다. 이 껍데기는 옷을 만들 수도, 하다못해 구워먹을 수도 없다. 실속이 하나도 없는, 그냥 껍데기일 뿐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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