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여우같은박영훈

입력 2008-08-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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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흑이 좋다. 박영훈으로선 2승이 ‘허연 허벅지살’을 슬쩍슬쩍 드러내 보이는 느낌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얼굴만 봐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프로기사들은 어려서부터 ‘포커페이스’를 훈련받는다. 반상의 형세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면, 그건 패 하나를 더 열어놓고 카드를 치는 것과 진배없다. 그런 점에서 포커페이스를 타고난 이창호 같은 기사는 얼마나 복받은 것인가. <실전> 흑1로 젖힌 것은 잘 나가던 흑의 실수이다. <해설1> 흑1이 정답. 이것이었다면 미세하지만 흑이 우세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실수가 나오니 이재웅의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흑이 좋았다고는 해도 역전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왔구나∼!’ 싶었을 것이다. 분위기가 반전되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이재웅의 손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백10이 통한의 실수. “아아! 이거였는데!” 국후 이재웅이 <해설2> 백1을 두드렸다. 백11까지(8-△) 백은 깔끔하게 살 수 있다. 실전과는 비교도 안 된다. 이렇게 두었다면 백이 거의 이긴 바둑이었다. 박영훈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이다. <실전>은 중앙 백이 엷어졌다. 그리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엷어진 만큼’ 졌다. 포커페이스라고는 해도 기사들이 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박영훈의 경우 시종 비관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그는 언제나 우울한 얼굴이다. 바둑이 끝나고 나서야 웃는다. 잘 생긴 얼굴이지만, 상대에게는 털꼬리 9개 달린 여우처럼 얄미울 것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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