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모든것이서러웠던첫출산

입력 2008-10-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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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5일은 큰아들 생일이었습니다. 문득 아들 생일상을 차려주고 나니 15년 전, 큰애가 갓 태어났을 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애가 태어나기 전인 10월 3일에 친정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할머니 장례식에 가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께서 “예정일도 얼마 안 남았데 어델가는겨? 거따가 앞으로 얼라 낳아야 하는디, 그런데 가서 쓰것냐? 안된다∼ 이번엔 안 된다∼” 이러셨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못 가게 하시니까 너무 섭섭했습니다. 그 뒤 이틀 만에 제가 아이를 낳았는데, 시어머니께서 “것봐라∼ 만약에 느그 고집대로 장례식 갔으면 우짤 뻔했냐∼ 나가 다 느그들 위해서 한 말인께, 섭섭하게 생각지 말어라∼”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친청 부모님께서 상주여서 산후 조리도 시어머니께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형님과 같이 살고 계시다가, 제 몸조리 때문에 저희 집에서 묵으셨는데, 저희가 워낙 집이 작아서 방 하나, 거실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실에 아기랑 같이 주무시면서 밤마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하시면서 앓는 소리를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낮에 공장에서 일하시고, 저녁엔 저를 보살펴주셨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퇴원한지 이틀 만에 설거지와 빨래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친정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몸은 편한지, 젖은 잘 나오는지, 아기는 순한지, 아이는 누구를 닮았는지 등을 물으시더군요. 그 순간 어찌나 울컥울컥 눈물이 나던지… 저는 가슴을 꾹 누르며, “우리 시어머니, 나 산후 조리 시키신다고 일주일 휴가 받으셨어. 그리고 나 지금 아주 편해 엄마. 어머니가 아주 잘 해주셔”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 날 저녁, 퇴근한 남편은 감기에 걸렸다면서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러면서 “나 아픈데 당신이 약 좀 사다 주면 안 돼?”라고 했습니다. 전 황당해서 “뭐? 애기 낳은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나보고 지금 밖에 나가서 약을 사오라고?” 했더니 “당신 솔직히 지금 아무렇지도 않잖아?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할 거 다 하잖아”이랬습니다. 순간 어찌나 설움이 밀려 왔는지 모릅니다. 마침 시어머니는 퇴근 전이라 집에 안 계시고, 저는 눈물을 글썽이며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가는 길에 동네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깜짝 놀라시며 어디 가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약을 사서 남편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시어머니도 남편도 모두 출근한 틈을 타서 저는 짐을 쌌습니다. 춥지 않게 아기를 포대기에 꼭 싸고, 챙겨놓은 옷 보따리를 들고 생전 처음으로 가출이라는 걸 했습니다. 그때는 친정에 가서 영영 안 올 생각을 하고 택시를 잡아탔는데, 친정으로 향하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런데 갓난아기를 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앉아있는 저를 보시더니 택시 기사분께서 그러셨습니다. “살다 보면 참 별일이 많아요. 언젠가는 오늘 일도 웃으면서 얘기 할 날이 올 겁니다”라며 위로를 건넸습니다. 마치 제 맘을 다 안다는 듯이 그렇게 말씀해주신 기사님께 위안을 얻고 저는 그날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기사님 말씀대로 웃으면서 이 일을 얘기합니다. 모든 일이라는 게 그 순간엔 엄청나게 힘들어도 지내놓고 나면 다 그렇게 무덤덤 해지는가 봅니다. 그 때 저 드라이브 잘 시켜주시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던 그 기사님, 그 때 참 감사했습니다. 1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때 일을 기억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충북 청주 | 김선영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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