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희망을심자]자폐이긴상협이와아빠임기원씨

입력 2009-0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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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어느 날 아내가 상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상협이가 ‘자폐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과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상협이가 겨우 22개월이 될 무렵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단 하루도 편할 날 없는 나의 고행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임기원(49)씨가 2000년에 자신의 경험담을 쓴 ‘아들아, 아빠 눈 보고 말해’라는 책의 머릿글이다. 남들이 부러워마지않는 명문대·명문학과를 나와 대기업을 다니며 승승장구하던 한 남자는 이렇게 어느 날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 아버지가. 상협이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지났지만 도저히 입학을 시킬 수 없는 상태였다. 자폐아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자해행위, 자동차 일렬로 세우기, 몇 시간씩 계속되는 침대 위에서 뛰기, TV광고에 대한 맹목적인 집중 같은 수십 가지의 이상행동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특수교육기관의 반복교육으로 약간의 명사를 말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 ‘엄마, 물’, ‘아빠, 밥’ 수준에 머물렀다.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언제 차도로 뛰어들지, 언제 갑자기 높은 계단에 올라가 뛰어내릴지 몰라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녀야 했다. 복지관에서의 부모교육을 시작으로 대학병원에서 1년간 엄마와 받은 애착교육, 특수교육과 병행한 유치원 생활, 인지교육. 그러나 상협이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어두운 좌절, 그리고 고통의 나날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결국 임 씨는 직장을 그만 두고 상협이의 교육을 자신이 전담하기로 마음먹었다. 눈물겨운 교육, 아니 전쟁이 시작됐다. 하루 24시간 아들 옆을 지키며 목이 붇도록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은 없었다. 흘릴 눈물이 있다면 피와 땀으로 쏟았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자신의 아들은 평범한 자폐가 아니었다. 시각우선자. 실낱같던 희망마저 사라졌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절대의 어둠 속에 혼자 내팽겨 쳐진 느낌이었다. 아니, 혼자라면 차라리 좋았다. 일평생 자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손을 내밀 수 없는, 아들과 함께였다. - 일반적인 ‘자폐’와 ‘시각우선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자폐는 말 그대로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이죠.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인간성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객관적 가치관에서 세상을 보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반면 시각적 인간은 동물성과 인간성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아예 애초부터 느낌, 인지, 감정이 없는 상태입니다, 껍데기만 있고, 속은 없습니다. 다만 자폐아와 외향적 행동이 비슷하기 때문에 자폐로 뭉뚱그려져서 부르는 거지요.” 상협의 근본적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면서 임 씨의 교육법도 달라졌다. 모든 교육은 ‘시각우선자’를 ‘논리우선자’로 전환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글자와 숫자를, 기본적인 말을 가르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사람을 먼저 만들어야 ‘사람’이 될 것이라 믿었다. - 시각우선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시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죠. 자신만의 시각적 영상 속에서만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예를 들어볼까요? 3년 전에 애인과 같이 강변의 카페에서 데이트를 했다고 합시다. 정상인 논리우선자는 주변의 풍경이 어떠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한 논리적인 기억이 남습니다. 하지만 시각우선 자폐아는 탁자가 몇 개였고, 색깔은 무엇이었으며 벽면의 광고판에는 어떤 광고가 붙어 있었는지 하는 시각적 기억만 머리 속에 남아있을 뿐입니다.” 상협이에 대한 임 씨의 교육은 철저히 ‘질보다 양’에 따랐다. 최소한 8시간은 교육해야 효과가 있다고 여겼다. 여기서의 교육은 학교에서 공부하듯 8시간 동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폐아의 정신을 시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전환시켜 아이의 정신이 현실에 머무르는 시간을 하루 24시간 중 최소한 8시간 이상 유지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시각우선 자폐아동의 경우 뇌의 논리적인 작동이 정지되었다는 뜻이지, 결코 그 기능이 죽어버렸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자폐는 단순히 인지 및 학습능력이 낮은 저능과 구별된다. - 책의 제목이 ‘아들아, 아빠 눈 보고 말해’입니다. 눈을 맞춘다는 것이 중요합니까? “눈 맞춤은 단순히 상대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이 현실의 그 무엇에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 맞춤의 정도를 보면 자폐아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임씨 역시 처음에는 억지로 상협이에게 눈 맞춤을 강요했지만 곧 무의미한 일임을 깨달았다. 자폐아에게 눈을 맞춘다는 것은 단순한 근육의 활동이 아닌, 시각 우선현상의 배제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각 우선현상이 없어지고, 논리적 능력이 키워지는 만큼 눈 맞춤의 시간이 길어진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버지의 힘은 기적을 일궈냈다. 정상아들과 함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마친 상협이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평범한, 그러나 기적과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장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운동을 좋아해 태권도가 2단, 요즘엔 검도에 푹 빠져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힘든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자폐아의 부모입니다. 세상 모든 동물 중에서 자기 보호 본능이 없는 존재는 자폐아뿐이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말해 자폐아에게는 감정이 없다. 아픔에 대한 감정이 없어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깔깔대며 달려든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도 아픈 줄을 모른다. 공격을 받아도 본능적인 방어능력조차 없다. 심할 경우 배고픔에 대한 감각조차 없다. 반대로 배가 꽉 찼는데도 토할 때까지 먹기도 한다. 가장 슬픈 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의 모든 인생을 희생하고 있는 ‘어머니’도 모른다는 것이다. 상협의 성공사례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임씨에게는 자폐아를 자녀로 둔 부모들의 상담과 교육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부모들의 고통과 고민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임 씨도 힘을 다해 돕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현실이 안타깝다. “자폐아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죠. 차라리 치매에 걸린 노인이라면 언젠가는 돌아가실 거란 마음이 있겠지만, 자폐아들은 육체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명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때는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시기가 옵니다. 자폐아 부모들의 바람이 뭔지 아세요? 자신의 아이들보다 딱 하루만이라도 더 사는 겁니다. 자신들이 죽기 전에 아이를 먼저 보내고 싶은 거죠. 그 마음, 아세요?” - 지금 이 순간 실의에 빠져 있는 자폐아 부모들께 조언을 해 주신다면? “세상 모든 이치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 이 세상에 전혀 길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희망이 있으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도 치열하게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상협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임 씨의 꿈은 소박하다. 인간성을 회복하게 된 상협이는 이제 임 씨에게 무한한 축복이 되었다. 상협이와 함께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 그리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가장 큰 보람이다. 임 씨는 스스로 ‘1%의 승률도 없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자폐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아무리 실패가 뻔히 보인다 해도 아버지로서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는 싸웠고, 결국 이겼다. 어려운 시기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들만의 ‘자폐’를 안고 살아간다. 1월 1일 새해 첫 날 본지 스튜디오를 찾은 부자는 더 없이 행복해 보였다. 두 사람은 ‘희망’을 좇다 스스로 ‘희망’이 되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임기원·임상협 부자의 희망을 전하고 싶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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