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언제나영화처럼] 8월의크리스마스

입력 2009-02-18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삼촌… 하늘로 갔다….” 한창 일하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합니다. 바쁘단 핑계로 돌아보지도 못했는데...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나 봐요.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서른여섯. 삼촌이 세상을 뜬 나이였습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으니까 ‘작은 아버지’가 맞겠지만 열 살 터울, 오빠 같던 ‘삼촌’입니다. 어릴 땐 친구처럼 잘 놀아줬습니다. 따뜻한 사람이었죠. 아홉 살 땐가, 제가 자기 안경을 망가뜨렸을 때도 웃었습니다. 고등학생 삼촌의 세뱃돈을 강탈(?)해 인형을 샀는데도 웃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갈 때는 옷 사 입으라며 상품권을 챙겨주던 속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서른 둘, 첫 암 수술을 받을 때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습니다. 한석규 씨 보면 삼촌이 생각납니다. 웃는 얼굴이 참 비슷하거든요. 훤칠한 키, 서글서글한 성격. 인기도 많았죠. 어린 아들에겐 친구 같은 아빠였고요. 일찍 가기 아까운 사람입니다. 한석규 씨가 나온, ‘8월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봤습니다. 30대 중반인 정원(한석규)은 시한부 인생을 살죠.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 해도 되는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비 오는 날 갑자기 우산 속으로 뛰어든 다림(심은하)을 불현듯 사랑하게 되지만, 살고 싶어질까 봐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영정사진을 찍고, 늙은 아버지에게 리모콘 작동법을 알려주고, 필름 현상법을 또박또박 적어놓으며 죽음을 준비합니다. 발인 다음날, 삼촌의 미니 홈피를 보았습니다. ‘살고 싶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 소소한 일상까지 사진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달콤한 허니문, 자신을 꼭 닮은 아들과 떠났던 여행. 손수 만들었던 케이크까지…. 병이 재발했음을 알았을 땐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요. 수십 번은 영화 속 정원처럼, 이불 덮고 끅끅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정원에게 다림이 그랬듯, 아내와 아들을 보면 살고 싶어질까 두려웠을 겁니다.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유명한 대사죠? 삼촌도 떠나면서 편지를 남겼습니다. 치료비를 내느라 늙은 부모님 여행 보내드릴 돈을 다 써버린 걸 안타까워하고, 남은 이들에게 여러 당부를 했습니다. 젊은 아내에겐 아들만 잘 키워줄 수 있다면, 좋은 사람 만나라고... 하기 힘든 말도 했습니다. 삼촌은 저의 가까운 사람 중 처음 세상을 뜬 사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왠지 나을 것만 같았고 아직도 실감나질 않습니다. 지금도 명절이면 삼촌이 걸어 들어올 것만 같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본 지금, 가슴이 먹먹합니다. 혼자서 담담히 죽음을 준비했던 그 시간 함께 하지 않았던 게 미안합니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살아있는 동안 가족들에게 웃는 모습만 보여주어 고마웠다고. 힘들었을 텐데 늘 좋은 사람이어서 고마웠다고... 조수빈 꿈많은 KBS 아나운서. 영화 프로 진행 이후 영화를 보고 삶을 돌아보는 게 너무 좋아 끼적이기 시작함. 영화에 중독된 지금,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나 영화 관련 일에 참여해보고 싶은 욕심쟁이, 우후훗!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