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고생만시킨우리딸행복하렴

입력 2009-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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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딸이 시집을 갑니다. 아직은 조금 빠른 나이 스물일곱 살, 막 피어나는 꽃 봉우리 같이 여리기만한 제 딸이 시집을 갑니다. 항상 생글생글 웃으면서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를 환하게 밝혀주던 우리 딸이 막상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보겠다는 말을 했을 때,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보내야한다는 마음이 저 깊은 곳에 자리하고는 있었지만,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지만 정들었던 딸을 갑자기 시집보내야 한다는 서운함 말고도, 제가 저희 딸 결혼식을 망설이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12년 전 새로 시작했던 농사가 거듭 실패하면서 큰돈을 대출 받게 됐는데, 빚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말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누구든 돈을 벌면 대출금 갚는 데에 온 신경을 썼고, 저희 딸도 돈부터 벌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딸을 시집보낼 여유자금도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사위 될 사람은 올해 서른하나로, 종손 집 장남인데, 제일 큰 문제가 바로 예단이었습니다. 저는 큰 맘 먹고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저기 저 예단 말인데요. 어떻게 했으면 좋을 지 말씀을 해주시죠” 하니까 “요즘엔 간단하게 돈으로 주고받던데 저희도 그렇게 하죠 뭐” 라고 하셨습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실은 저희 집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 합니다. 10년 넘게 끌고 왔던 대출금 상환도 이제 막 끝났고, 저희 가족 똘똘 뭉쳐 이제부터 돈을 모아야하는데, 갑작스럽게 날짜를 잡게 됐으니, 저희 집 사정을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예단비는 많이 못 드리고 이백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서운하시더라도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더니, 저희 사돈들께서 흔쾌히 이해해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혼수도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간단하게 밥만 끓여 먹게 해주세요. 큰 거는 자기들끼리 살면서 하나씩 장만해 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예쁜 따님 정성 들여 키우셨는데, 저희에게 보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결혼반지도 안사돈이 시어머님께 받은 반지가 있다며 그걸 세팅해서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먼저 친정과 시댁 형제들한테 전화를 해서 축의금을 미리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다들 저희 집 형편을 알고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일하는 틈틈이 가구점, 전자제품, 이불집, 커텐집, 그릇집 수도 없이 돌아보며 가격 비교를 했습니다. 그때 한 가구점에서 각 매점마다 진열품 교체 시기가 있으니 그때 구입하면 40%는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딸애한테 깨끗한 새것을 못 해주고 진열품으로 혼수를 해줘야 돼 미안했지만, 저렴한 가격 덕분에 저희는 생각보다 많은 물품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희 딸 호경이, 시집가서 예쁘게 살 일만 남았습니다. 3월22일! 하얀 웨딩드레스 입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신부가 될 우리 딸! 신혼살림을 때 묻은 진열품으로 장만해줘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엄마 하는 대로 따라와 준 착한 내 딸입니다. 제가 “나중에 애기는 엄마가 힘닿는 데까지 키워주마” 했더니 농담인 줄 알고 웃는데 진심입니다. 품에 있을 때 고생만 시킨 것 같아, 결혼 후에도 계속 잘 해주고 싶습니다. 부디 잘 살라고 엄마가 많은 걸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인천 부평 | 고옥선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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