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이면 유독 시어머니의 청국장찌개가 그리워집니다. 뽀글뽀글 뚝배기에 청국장을 듬뿍 넣어, 구수한 냄새나게 끓이다가, 청량고추 쏭쏭 썰어 얼큰하게 끓여낸 청국장찌개, 그 청국장찌개를 갓 지은 흰쌀밥에 얹어 싹싹 비벼 먹으면 콩 알갱이가 참 구수하게 씹히곤 했습니다.
어머님은 원래 시골에 사셨는데, 지난 2002년 아파트로 이사하셨습니다. 아파트로 이사하신 첫 해에, 청국장은 직접 떠야 맛있다며 전기장판에 청국장을 뜨셨습니다. 청국장은 원래 일정한 온도를 계속 유지시켜줘야 상하지 않고 잘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시부모님 계시는 아파트와 가까이 살기 때문에 종종 찾아뵙곤 했는데, 코를 찌르는 청국장 냄새에 처음엔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코를 막고 “어머님! 번거롭게 왜 청국장을 직접 뜨세요? 요즘에는 청국장 만드는 기계가 다 있어서 그걸로 하면 냄새도 안 나고, 얼마나 편한대요∼ 제가 하나 사 드릴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에이그∼ 기계로 떠 봐야 제 맛이 나겠냐? 몇날 며칠 먹을 건데, 한번 수고스럽더라도 제대로 해야지. 옛날 같았으면 군불지핀 뜨끈한 온돌방 아랫목에 떴을 텐데, 여기는 보일러를 돌릴 수도 없고 아쉬운 대로 전기장판이라도 써야지. 끈적끈적 진이 나오면 얼마나 구수하고 맛있는 청
국장이 되는데, 너는 아파트 살아서 그 맛을 모르지? 내가 해 줄게. 함 먹어봐라” 하시면서 작은 방에 전기장판을 쫙∼ 펼쳐놓으시고, 그 위에 주먹 만하게 청국장을 뚝뚝 떼어 올리시고, 며칠씩 청국장을 뜨셨습니다.
며칠 뒤 어머니께서 청국장이 다 됐다며 저희 집도 주시고, 앞집에 사는 새댁에게도 “이게 보기엔 못 생겼어도 사다 먹는 것보다 맛이 좋을 거야”라며 몇 덩이 주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주신 청국장으로 찌개를 끓여 봤는데 세상에나 그 맛이 어찌나 좋은지… 무 썰고, 두부 넣고, 청국장만 한 국자 뚝 떼
어 넣었을 뿐인데, 그날 진수성찬이 안 부러울 정도로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그 이듬해 2003년, 어머님께서 뇌출혈로 수술을 받으셨고 후유증으로 거동을 못 하고 계십니다. 며느리로서 모셔야 되는데 직장 다니느라 형편이 그렇게 되질 못 합니다. 가까이 사니 자주자주 찾아뵈며 아버님 식사도 챙겨드리고 어머님 빨래도 해드리고 하는데,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님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청국장 중에 제일 맛있던 어머님 청국장. 앞으로 그 맛을 또 볼 수 있을까요? 어머님께서 건강이 좋아지면, 온 가족 도란도란 모여 뚝배기 그릇에 보글보글 끓인 청국장으로 맛있는 식사를 할 겁니다. 그 일이 꼭 이뤄지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경기 구리 | 김순화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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