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유격수들,떨고있니?

입력 2009-04-11 13: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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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욕 데일리 뉴스는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를 두고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골드 글러브 출신 지터의 수비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 ‘미스 플레이가 많다.’ 이런 내용과 함께 35세 이상의 선수를 주전 유격수로 두고 월드시리즈에 오른 팀은 1956년 이후 없다는 재밌는 분석을 내놓았다. 포스트시즌으로 폭을 넓힌다 하더라도 지난 10년 동안 단 한 팀도 없었다. 그만큼 유격수 수비력이 가진 파급효과는 상상 그 이상이라는 걸 보여주는 반증인 셈이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인다. 서른여섯 살의 김민재, 서른셋의 박진만. 제 1회 WBC를 군림하며 세계 최정상급 수비의 한국 유격수를 자랑했던 두 거목이 시즌 시작과 함께 흔들리고 있다. 박진만의 몸 상태는 아직 정상까지 올라오지 못한 듯하다. 인천 고등학교 졸업 이후 프로에 뛰어들어 1할 대를 오가는 형편없는 타율에도 꽃미남 외모로 여심을 흔들었던 앳된 모습은 이미 달나라로 사라지고 어느덧 수수한 얼굴로 삼성의 주장으로 선임됐던 그는 지난 2회 WBC에서도 어깨 부상 때문에 끝내 엔트리에서도 빠지더니 시즌 개막 이후까지도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다. 9일 히어로즈전에서 2루수 김상수의 천금같은 다이빙 캐치 이후 병살을 위해 2루에 던진 공을 밑으로 흘려 대량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더니 바로 다음날 KIA전에서도 평범한 6-4-3 더블플레이 타구를 한 차례 펌블하며 병살타로 연결하지 못해 타자 주자를 살려줬다. 이날은 다행히 실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과거 어려운 타구를 정말 쉽게 처리하던 모습과는 어딘가 모르게 멀어져 있는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이런 박진만의 부진은 김상수의 등장과 오버랩되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시즌 전 미디어데이 인터뷰를 통해 “박진만 선배를 뛰어넘는 선수가 되겠다”는 당찬 발언을 했던 김상수. 그 때만해도 그저 호기롭게만 들렸던 그 말이 이제는 시간문제가 아니겠냐는 생각을 들게 한다. 아직까지 선동열 감독의 머릿속의 주전 유격수는 당연히 박진만이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박진만=유격수’라는 공식의 유효기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김민재의 입지는 더 불안하다. 송광민이 시범경기 홈런, 타점부문 맹활약으로 소소한 관심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어차피 시즌이 개막되면 김민재가 주전 유격수가 될텐데”, “송광민은 주전으로 나갈 포지션이 없어서 아쉽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김인식 감독의 송광민 기용은 팬들과 언론, 심지어 코치들의 예상까지 완전이 깨버렸다. ‘수비가 안 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개막전 선발 유격수 자리에 이름을 올린 송광민은 SK 채병용으로부터 개막 첫 홈런을 비롯해 호수비로 김 감독을 매료시킨 뒤 매 경기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다. 10일 경기까지 김민재의 활약은 4경기 교체로 나와 4타수 무안타가 전부이다. 서른다섯이었던 지난해 이미 알게 모르게 2루수 한상훈으로부터 많은 플레잉 타임을 빼앗겼던 김민재는 돌 글러브라는 오명 때문에 자기 자리를 위협할 거라고 예상도 못했던 송광민에게까지 자리를 내주고 시즌 초반을 벤치에서 보내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 지금의 모습이 끝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몸을 끌어올리는 시간이 긴 노장들에게는 겨우 여섯 경기를 치른 지금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한 번 쭉 치고 올라간 선수들이 또 그 끝을 모르고 떨어지기 시작할 때, 은근한 뚝배기처럼 천천히 끓고 계속 그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게 바로 베테랑들의 힘이니 말이다. 엠엘비파크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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