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란 묘한 게임이다. 상대의 경기 장면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펼쳐야 한다.
109번째 US오픈은 골프의 묘미를 그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23일 펼쳐진 최종 4라운드 경기는 누가 봐도 필 미켈슨의 날이었다.
12번홀(파4) 버디에 이어, 13번홀(파5) 이글로 3타를 줄이면서 단숨에 단독 선두로 뛰어 올랐다. 축구로 치면 2대0으로 뒤지다 해트트릭을 작렬시키며 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너무 방심했다. 샴페인을 터뜨릴 생각에 마지막 5분을 버티지 못했다. 15번홀(파4)에서의 3퍼트는 결정타였다.
버디 기회에서 보기로 무너지며 주말골퍼 수준의 퍼트 실력을 보였다.
같은 상황에서 타이거 우즈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17번홀(파3)에서는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대로 보여줬다.
티샷이 짧게 쳐 그린 앞 러프에 빠뜨렸다. 위기를 잘 넘겼더라면 18번홀에서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미켈슨은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반면, 우승자 루카스 글로버(미국)는 미켈슨의 경기 장면을 보지 못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미켈슨과 함께 플레이 했더라면 기세에 눌려 무너질 상황이었다. 미켈슨의 플레이를 보지 못한 글로버는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고, 초반 불안했던 모습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을 되찾고 정상 등극에 성공했다.
미켈슨은 유난히 메이저대회와 인연이 없다. 이번 대회까지 미켈슨의 메이저대회 전적은 62전 3승이다. US오픈에는 20년째 출전했지만 우승 없이 준우승만 다섯 차례 기록했다. 특히 2006년에는 9부 능선까지 넘었다가 마지막에 좌절을 맛봤다. 18번홀에서 더블보기로 자멸하며 제프 오길비(호주)에게 우승컵을 빼앗겼다.
투어에서 36승을 따냈지만 메이저 우승은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 마스터스, 2005년 PG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게 고작이다.
2인자라는 타이틀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성적표다. 적어도 타이거 우즈(통산 67승, 메이저 14승)의 절반은 따라갔어야 한다.
결정적인 원인은 ‘새가슴’이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우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 반면, 미켈슨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마다 퍼트가 말을 듣지 않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US오픈을 앞두고 그의 각오는 비장했다. 아내 에이미의 갑작스런 유방암 통보에 충격을 받았지만, “US오픈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에 칼을 갈았다. 유방암 치료를 상징하는 리본도 달았다.
하지만 미켈슨은 “결과에는 실망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다”는 말을 남기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