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웃에 사는 젊은 엄마가 놀러왔습니다.

그런데 거실에 떠억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를 보더니 “이 집에 학생은 없는 것 같던데, 피아노는 누가 쳐요?”하고 물어보더군요.

전 당당하게 “누가 치긴요, 제가 치는 피아노에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못 믿겠다는 듯이 “아줌마가요?”하고는 눈이 커다래져서 되묻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제 나이가 내일 모레면 예순이거든요.

저는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피아노를 배우게 된 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제 나이 마흔 여덟.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아들은 군대 보내놨더니,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이 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뭘 해야 보람되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중학생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제가 피아노에 반한 건 45년 전, 중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됐을 때였습니다. 방과 후에 음악실 앞을 지나가는데, 띵동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맑고 영롱한 소리에 반해서, 저도 모르게 음악실 문을 살짝 열어봤죠. 그 곳에선 우리 반 반장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멋져 보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저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상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피아노는 제 마음속에 꿈으로만 간직해야 했죠.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해서 아이 둘을 낳은 아줌마가 됐습니다. 그런데 늘 제 마음속에는 어떤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피아노였던 것 같은데, 기회가 생겨서 막상 피아노를 배우겠단 결정을 하고나니까, 마음이 어찌나 급해졌는지 모릅니다. 우선 집 앞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찾아갔습니다. 원장 선생님께선 어느 아이의 학부형이냐고 물으시더군요. 전 쑥스러웠지만 피아노를 배우러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그 날 바로 등록을 해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원장 선생님께서도 놀라우셨는지 “사실, 어머님들이 가끔 찾아오셔서 면담을 하긴 해도, 진짜 배우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어머니는 용기가 참 대단하시네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에 나갔고, 마음이 앞서서 그랬는지 몰라도 진도는 일사천리로 나갔습니다. 한 달 사이에 바이엘을 마쳤고, 다음 달부턴 체르니 100번과 소나티네, 하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반주법도 조금씩 배웠습니다. 집에 와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그리움만 쌓이네’ ‘금지된 장난’ ‘얼굴’ 등을 연습하는데, 제 손 끝을 통해 그럴듯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사실 체르니 30번을 배울 때는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때문에 애도 먹고, 좌절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고비를 넘긴 지금은 어떠한 곡도 조금만 연습하면 다 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고,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1학년인 외손자에게 ‘캐논 변주곡’을 배우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통해 손자와의 관계도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 좋네요.

제가 외로울 때, 쓸쓸할 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제게는 없어선 안 될 피아노! 저의 평생 친구이며 저의 보물이랍니다!

경기 광명시 | 정현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