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리버스토크]편법이냐발전이냐…‘립싱크의아이러니’

입력 2009-07-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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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용어 중에 음악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립싱크’[lip sync]가 아닐까 싶다. ‘립싱크’는 ‘립 싱크로나이즈’(lip synchronize)의 약칭으로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수가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지 않고, 미리 노래와 반주가 녹음된 것(AR)에 입을 맞추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립싱크가 처음 등장한 1950년대만 해도 가수가 립싱크를 하는 것은 흠이 아닌, 오히려 방송사에서 환영하는 무대였다. 팝음악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인 미국 ABC의 ‘아메리칸 밴드 스탠드’(American Bandstand). 1952년 9월, 필라델피아의 지역 방송에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팝의 여러 유행과 트렌드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립싱크이다. ‘

그전까지 음악 프로그램은 스튜디오에 나온 악단의 반주에 맞춰 가수가 라이브로 노래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음향 기술로는 음반에 맞먹는 사운드를 텔레비전으로 들려주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등장한 아이디어가 레코드를 틀고 거기에 맞춰 가수가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었다.

립싱크는 ‘아메리칸 밴드 스탠드’에 50년대 당시 아이들 스타였던 폴 앵카가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폴 앵카는 이 프로그램에서 히트곡 ‘다이애나’를 레코드에 맞춰 입만 벙긋거리며 립싱크로 불렀다. 그런데 생방송 도중 그만 레코드 판이 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 나와 함께 있어 줘, 다이애나’(Oh, Please stay with me, Diana)라는 구절에서 ‘오’(Oh)라는 부분이 계속해서 반복 된 것. 당시 약관의 나이였던 폴 앵카는 침착하게 레코드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때까지 그 부분을 계속 불렀다고 한다. 이후 립싱크는 방송의 참신한 제작 기법으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립싱크는 그때와는 정반대로 노래에 자신있는 가수라면 피해야할 금기 사항이 되어버렸다. 립싱크를 했느냐, 아니냐에 대해 시청자나 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몇몇 가수들은 반주 녹음에 코러스나 화음 또는 라이브로 부르기 부담스런 소절을 같이 담아 가수의 라이브 부담을 줄여주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결코 정석은 아니지만 방송을 보는 시청자에게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택한 일종의 차선책이라는 점에서 ‘현실 참작’은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무대 여건이나 음향 시스템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라이브만이 가수의 절대선’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이런 편법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엔터테인먼트부장]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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