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인 9단(66)을 보기 힘들어졌다. 24일 SKY바둑배 시니어연승전 대국장에 김 9단은 나타나지 않았다. 건강문제로 기권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날 대국상대는 조훈현 9단이었고, 참으로 오랜 만에 성사된 ‘추억의 국수대결’을 고대했던 팬들로선 아쉬움을 털기 힘들었다.
이후 30일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예선전에서도 김 9단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의 건강이 요즘 상당히 좋지 않은 모양이라 걱정이다. 김인 9단, 아니 김 국수는 조남철 선생이 비운 자리를 홀로 지키고 있는 한국바둑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어른이다. 그의 삶은 바둑으로 치면 외길수순과 같았다. 삶이 곧 바둑이었지만 그는 바둑과 삶의 안온함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국수의 대명사로 추앙받았지만 그의 살림살이는 역대 국수 중 가장 넉넉하지 못했다.
15년 전 김 국수와 보냈던 일주일을 떠올린다. 1990년대 중반의 겨울로, 지금은 사라진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이 일본 도쿄에서 열리고 있었다.
김 국수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바둑계에 유명하다. 대회가 열리는 일주일 간 김 국수와 스태프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셨다.
양주도, 사케도 아닌 소주였다. 당시에도 일본에서는 꽤 비싸게 팔리던 소주를 물처럼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회가 진로배였던 덕이었다. 진로 측에서는 대회 관계자 선물용으로 특제품 소주(병이 아닌 고급 도자기에 담겨있었다)를 수 십 박스나 보내왔고, 일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소주는 고스란히 우리들의 뱃속으로 들어왔다. 김 국수를 포함한 우리 술꾼 모두에게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출장이었다(이 대회에서 한국은 우승도 했다). 김 국수는 매일 밤 일종의 ‘베이스캠프’인 우리들의 방을 노크했다.
김 국수는 술을 멋있게 마신다. 평소 과묵한 그도 술이 들어가면 어릴 적 일본 유학시절부터 시작해 좀처럼 듣기 어려운 자신의 얘기를 술술 풀어낸다. 김 국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고고한 선비의 고담준론을 대하는 듯 품위마저 느껴졌다. 어느 정도 술이 오른 밤, 김 국수는 멋쩍은 얼굴로 “낮에 한국식당에서 먹었던 백김치가 너무 맛있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매일 밤 근사한 주연을 베풀어 준 김 국수에게 깜짝 선물을 하기로 했다. 프로기사 Y사범과 기자는 술자리에서 몰래 빠져나와 아카사카 거리를 헤맨 끝에 문제의 식당을 찾았고, 문을 막 닫으려는 식당에 들어가 백김치를 얻어 왔다.
그때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김 국수의 얼굴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두주불사의 김 국수도 세월의 힘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 지극히 사랑하던 소주를 멀리하고 근년에는 와인으로 주종을 바꾸었다. 그나마도 최근 들어서는 입에 대기 힘들어 한다는 소식이다.
김 국수는 존재감만으로도 바둑 팬들에게 자긍심과 행복감을 안겨주는, 우리 바둑계의 커다란 상징이다. 그토록 소중한 상징을 시들게 하는 세월이 그저 야속할 뿐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이후 30일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예선전에서도 김 9단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의 건강이 요즘 상당히 좋지 않은 모양이라 걱정이다. 김인 9단, 아니 김 국수는 조남철 선생이 비운 자리를 홀로 지키고 있는 한국바둑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어른이다. 그의 삶은 바둑으로 치면 외길수순과 같았다. 삶이 곧 바둑이었지만 그는 바둑과 삶의 안온함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국수의 대명사로 추앙받았지만 그의 살림살이는 역대 국수 중 가장 넉넉하지 못했다.
15년 전 김 국수와 보냈던 일주일을 떠올린다. 1990년대 중반의 겨울로, 지금은 사라진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이 일본 도쿄에서 열리고 있었다.
김 국수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바둑계에 유명하다. 대회가 열리는 일주일 간 김 국수와 스태프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셨다.
양주도, 사케도 아닌 소주였다. 당시에도 일본에서는 꽤 비싸게 팔리던 소주를 물처럼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회가 진로배였던 덕이었다. 진로 측에서는 대회 관계자 선물용으로 특제품 소주(병이 아닌 고급 도자기에 담겨있었다)를 수 십 박스나 보내왔고, 일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소주는 고스란히 우리들의 뱃속으로 들어왔다. 김 국수를 포함한 우리 술꾼 모두에게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출장이었다(이 대회에서 한국은 우승도 했다). 김 국수는 매일 밤 일종의 ‘베이스캠프’인 우리들의 방을 노크했다.
김 국수는 술을 멋있게 마신다. 평소 과묵한 그도 술이 들어가면 어릴 적 일본 유학시절부터 시작해 좀처럼 듣기 어려운 자신의 얘기를 술술 풀어낸다. 김 국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고고한 선비의 고담준론을 대하는 듯 품위마저 느껴졌다. 어느 정도 술이 오른 밤, 김 국수는 멋쩍은 얼굴로 “낮에 한국식당에서 먹었던 백김치가 너무 맛있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매일 밤 근사한 주연을 베풀어 준 김 국수에게 깜짝 선물을 하기로 했다. 프로기사 Y사범과 기자는 술자리에서 몰래 빠져나와 아카사카 거리를 헤맨 끝에 문제의 식당을 찾았고, 문을 막 닫으려는 식당에 들어가 백김치를 얻어 왔다.
그때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김 국수의 얼굴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두주불사의 김 국수도 세월의 힘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 지극히 사랑하던 소주를 멀리하고 근년에는 와인으로 주종을 바꾸었다. 그나마도 최근 들어서는 입에 대기 힘들어 한다는 소식이다.
김 국수는 존재감만으로도 바둑 팬들에게 자긍심과 행복감을 안겨주는, 우리 바둑계의 커다란 상징이다. 그토록 소중한 상징을 시들게 하는 세월이 그저 야속할 뿐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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