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호랑이같으시던아버지손자엔‘천사표할아버지’

입력 2009-09-11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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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정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무뚝뚝하신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가 조금씩 달라지신 건, 맏딸인 제가 결혼을 하고 첫 손자를 안겨 드리고 나서였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며 산후조리를 했습니다. 제가 첫 애를 낳고 집에 갔을 때, 아버지께선 아무 말 없이 갓난쟁이를 받아 드시더니 눈가가 촉촉해지셔서 “아이고, 어디서 이런 게 나왔냐? 세상에, 애가 이렇게나 작았냐? 참말로 예쁘게 생긴 게, 어렸을 때 니 얼굴을 쏙 빼 닮았구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조금씩 자라고, 예쁜 짓이 늘어날 때마다 덩달아 아버지도 말씀이 늘어나셨습니다. 가끔 가다 제가 친정에 갔을 때, 아이가 제게 매달리거나 떼를 써서 힘들게 굴 때면 엄마는 “이것아, 느그 엄마 힘들어. 다 큰 게 뭘 업어달라고 해”라면서 싫은 소리도 하시고 혼도 내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선 “왜 애를 혼내고 그래? 애가 어른 말 다 잘 듣고, 엄마 속 알면 그게 애여? 어른이지?”하면서 손자를 혼내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이렇다 보니, 제 아이도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좋아했죠. 이 녀석이 “할아버지, 어부바”라고 하면서 아버지 등에 매달리면 아버지께선 “아이구, 우리 강아지! 그래 그래, 어부바 해 줘야지. 저기 가서 멍멍이도 보고, 쭈쭈바도 사 갖고 오자”하시면서 당신의 등을 기꺼이 내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달라지신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손자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면, 아버지께선 손자를 뺏어와 당신 무릎에 앉히시고는 “당신은 먼저 먹어. 나는 이 녀석 먹이고 나중에 먹을 테니께. 난 요새 도통 밥맛이 없네”라며 밥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손자 입에 들어가는 밥이 꼭 당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처럼 맛있어 하셨고, 즐거워 하셨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늙더니 느그 아버지도 주책이다. 애들을 다 예뻐하고”라며 곱게 눈을 흘기셨습니다.

일을 하시다가도 손자들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열일을 제치고 손자를 맞이해 주시던 아버지. 손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은 제가 어렸을 때는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사랑에 가득 찬 눈빛이었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오랫동안 보셨으면 좋으련만 그 재롱을 오래보지 못하시고 몇 년 전 병환으로 하늘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선 아마 하늘에서도 자식들에게 못 다해준 사랑과 웃음을 손자들에게 보내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From. 이미란|서울시 종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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