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수첩] 경주마도 대접받는 미국

입력 2009-12-27 17: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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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팬들에게 경마를 스포츠로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어떤 답이 나올까. 스포츠라기보다는 레저에 가까운 게 국내 현실이다.

경마하면 승부조작, 도박, 사행 등이 연관돼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 편이다. 경마를 ‘건전한 레저’라고 애써 강조하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경마의 역사가 짧고 스포츠로서 환경조성이 안돼 있는 탓이다. 하지만 경마는 분명 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나다.

AP는 지난 주 2009년 한 해를 넘기면서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 스포츠인(Female Athlete of the Year)’으로 테니스 스타 서리나 윌리엄스(28)를 뽑았다. 올해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윔블던 우승을 비롯해 US오픈 준우승을 한 윌리엄스의 수상은 비록 매너는 낙제점이었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윌리엄스는 US오픈 대회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라인 저지에게 욕설을 퍼부어 테니스 역사상 최고액인 8만2500달러의 벌금 제재를 받았다.

후보로 선정된 선수 가운데 눈길을 끄는 두 후보자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선수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암컷 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158개지 스포츠 편집인들은 여성 스포츠인 2위에 5살짜리 암컷 경주마 제냐타를 올려놓았고 6위로 라첼 일렉산드라를 뽑았다.

참고로 올해의 여성 스포츠인 2위는 은퇴한 뒤 아기 엄마로 복귀해서 US오픈 테니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킴 클리스터였다. 3위는 스키어 린제이 본, 4위는 다이나 토로시, 5위는 마야 무어(이상 WNBA)순이었다.

미국에서 경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 여성 스포츠인 투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냐타는 올해 경주에서 5전 전승을 거둔 뛰어난 경주마다.
특히 지난 11월 산타아니타(LA 인근) 경마장에서 가장 큰 상금이 걸려 있는 브리더스 컵 클래식에서 꼴찌로 출발했지만 선두로 들어와 큰 인상을 남겼다. 통산 경마대회 전적도 14전 14승으로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세 암말 라첼 알렉산드라는 트리플 크라운 대회 가운데 하나인 프리크네스 우승과 함께 올해 8전 전승을 거두며 주가를 올렸다. 프리크네스에서는 암말 사상 85년 만에 우승을 기록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실 국내에서는 경마대회가 스포츠로서 정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경마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잘 모른다. 스포츠 기자조차도 담당이 아니면 경주마 이름 등은 관심 밖이다. 경마는 국내에서 그들만의 리그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미국은 일찍부터 경마가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999년 AP가 선정한 ‘세기의 스포츠인 100인(Top 100 Athletes of the Century)’에 경주마가 당당히 포함돼 있다. 1973년 켄터키더비(루이빌), 프리크네스(볼티모어), 벨몬스테이크(뉴욕) 대회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세크레테리아트(Secretariat)’가 주인공이다. 스포츠 100인 가운데 81위에 랭크됐는데 ‘철인’ 칼 립켄 주니어(볼티모어 오리올스)보다 한 단계 높은 서열이었다. 경마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누리고 팬들에게 어필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회를 임하는 과정이 스포츠이벤트와 다를 바가 없다.

이번 투표 결과를 놓고 레전더리 경주마 트레이너이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봅 배퍼트는 “이들 두 경주마가 올해 거둔 성적은 눈부신 것이다. 두 말은 팬들에게 인식될 가치가 있다. 두 말은 반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고 평했다. 국내에서도 경마가 하루빨리 스포츠로 뿌리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LA | 문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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