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씽스페셜] K리그 득점왕, 월드컵엔 줄줄이 낙방

입력 2010-02-05 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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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스포츠동아DB

2009 K리그 득점왕 이동국(31·전북)의 남아공월드컵 출전을 위한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득점왕과 월드컵. 얼핏 보면 굉장한 상관관계를 맺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역대 K리그 득점왕 가운데 용병을 제외한 국내선수 16명 중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는 겨우 4명뿐이다. K리그 득점왕들과 월드컵의 인연은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다. 이동국이 이런 악연을 극복하고 남아공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K리그 득점왕들의 굴욕

K리그 득점왕들이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것은 프로리그 출범 이후 계속됐다. 86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83년 박윤기, 84년 백종철이 득점왕에 오르고도 멕시코에 가지 못했다.

90년에도 비슷했다. 88년 이기근, 89년 조긍연이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지만 월드컵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선 김호 감독이 92년 임근재, 93년 차상해 등 득점랭킹 1위를 외면했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도 96년 신태용, 97년 김현석이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월드컵 출전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0년 이후에는 용병들이 득점랭킹을 석권하다시피 하면서 국내파들의 설자리가 줄어들었고, 2003년 김도훈, 2006년 우성용은 월드컵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국내용, 국제용은 따로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대한축구협회는 대표팀 소집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다보니 태극전사들은 소속팀 경기를 많이 뛸 수 없었다. 자연히 개인타이틀 경쟁에서 밀렸다.
대표 선수들이 K리그 개인 타이틀을 석권하기가 힘들었던 이유다.

당시 감독들은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잘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말한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지휘했던 이회택 감독은 “국제용과 국내용 선수가 따로 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당시는 K리그 경기 내용보다는 국제경기 경험이 대표팀 발탁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90년대 후반, 해외파들이 증가한 것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겼다. 당시 J리그 진출이 붐을 이뤘다. 대표선수들 중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등 많은 공격수들이 J리그의 러브 콜을 받고 K리그로 떠났다. 이런 탓에 국내 스트라이커들의 경쟁력이 하락하면서 2000년대 들어 득점왕은 용병들의 차지였다. 득점왕 출신 대표선수가 나오지 못한 원인이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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