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기 (백미를 증기로 쪄 고두밥을 만든다). 스포츠동아DB
□ 막걸리 수난사
40대 이상이라면 예전 막걸리의 ‘쫀쫀한’ 맛을 기억할 것이다. 촌로의 이맛살처럼 쭈글쭈글한 플라스틱 용기, 노란 양은 주전자에 찰랑찰랑 담겨져 나왔던 막걸리. 지금보다 텁텁하고 마시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노리끼리한 옛 막걸리의 추억은 설탕이라도 탄 듯 달기만 하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그때 막걸리는 쌀이 아닌 밀로 만든 막걸리였다. 경제사정과 정부의 시책에 따라 우리나라 막걸리는 쌀막걸리가 됐다가 밀막걸리가 됐다가, 다시 쌀막걸리가 되는 기구한(?) 운명을 겪어 왔다.
서울탁주제조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과거에는 쌀로 막걸리를 만들었지만 1963년부터 정부 시책으로 잡곡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백미를 20%%까지 허용하는가 싶더니 쌀값이 오르자 다시 전량 잡곡을 쓰게 했다.
1966년에는 잡곡 전량 사용규제로 소맥분을 사용했고 고구마 또는 전분을 일시 사용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밀막걸리’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1977년 박정희 대통령 때 ‘통일벼’가 남아돌자 ‘백미 100%%’사용이 의무화됐다. 사람들은 “오랜 만에 쌀막걸리 맛을 보게 됐다”며 좋아했지만 불과 2년 뒤인 1979년 다시 막걸리는 밀막걸리로 회귀했다. 쌀이 부족해지자 정부 시책이 또 바뀐 것.
서울 탁주제조협회 성기욱 전무는 “심할 땐 1년에 다섯 번도 제조 방침이 바뀌기도 했고, 심지어 홍수에 침수된 쌀을 쓰라고도 했다. 한 마디로 ‘만만한 게 양조장’이었다”고 회고했다.
백미 100%%의 쌀막걸리가 다시 등장한 것은 우루과이라운드의 시기로 무려 11년이나 지난 1990년의 일이다. 탁주제조협회장이 당시 농림부장관을 찾아가 항의성 면담을 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자리에서 장관이 “앞으로는 쌀 공급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 장담했다고 한다. 지금은 쌀이든 밀이든 제작자가 원하는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막걸리는 백미 100%% 또는 백미와 밀을 섞은 것들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